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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못 배웠으면 애 낳지 말란 신호 같아”

20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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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사건에서 아이가 벌을 받아선 안 된다고 강조하는 김예원 변호사.
5월13일 즉각 분리 당시 흐엉 씨네 아이들이 미처 가져가지 못한 가방.

김예원 변호사는 명확하게 해두고 싶은 점이 있다고 했다. “아동학대자 입장을 대변하려는 게 아니다. 행정이 처벌에만 집중해, 아동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문자를 보내자마자 전화가 왔다. “말씀해주신 흐엉 씨 사건('아이와 부모 고통 주는 허술한 법 한 줄' 기사 참조), ㄱ시에서 일어난 사건하고 다른 거죠?” 서로 다른 건이라는 대답을 듣자 김예원 변호사(장애인권법센터 대표)가 한숨을 쉬었다. 지난 2월 이른바 ‘정인이법(아동학대범죄처벌 특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에도 “이런 법이 통과되는 건 정인이를 위한 길이 아니다”라며 비판하던 그였다.

7월3일 〈hbs뉴스광장〉 편집국에서 김예원 변호사를 만났다. 질문을 받기에 앞서 그는 한 가지 명확하게 해두고 싶은 점이 있다고 말했다. “아동학대자의 입장을 대변하려는 게 아니다. 아동학대는 당연히 무겁게 처벌받아야 할 범죄다. 다만 모든 행정이 아동학대자 처벌에만 집중되는 바람에, 정작 피해 아동들이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점을 지적하고 싶다.”

즉각분리제도가 도입된 지 3개월이 지났다.

2회 이상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아동을 현장에서 즉시 분리할 수 있게 됐다. 이틀에 한 번꼴로 “아이가 즉각 분리됐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문의를 받는다. 그런데 아동을 만나보기 전에는 아무런 대답을 해줄 수 없다. 무조건 아동부터 먼저 만나고, 그 아이가 현재 원치 않는 상황(집에 돌아가고 싶은데 시설에 계속 머물고 있는 경우 등)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만 사건에 개입한다.

시설에 계속 머물고 싶어 하는 아동도 있는지?

물론 있다. 보호자가 정말 폭력적이거나 아이들을 쓰레기장 같은 집에 방치하는 경우다. 이런 가정에서 분리된 아이들은 시설에서 훨씬 큰 안정감을 느끼기도 한다. 분명 일시정지 버튼이 필요한 상황이 있다. 분리 자체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아동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반영이 안 되고 있다. 지금까지 즉각 분리된 사례 중 원칙을 지킨 사건이 거의 없다. ‘아동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서를 받는다’와 같은 내용이 법이 아니라 매뉴얼에만 나와 있다. 그마저 일반에는 공개되지 않는 매뉴얼이다. 사실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상황이다.

왜 법이 아닌 매뉴얼에 원칙이 담겨 있나?

너무 급하게 법이 통과됐다. 지난해 10월 정인이가 사망하고 뉴스가 엄청 나오니까 11월 초에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이 공동 보도자료를 냈다. 제목이 ‘아동학대 두 번 신고되면 즉시 분리 보호한다’였다. 거기서 처음으로 즉각분리제도가 언급됐다. 그리고 12월에 즉각분리제도가 추가된 아동복지법 개정안이 통과돼버렸다.

당시에도 무리한 입법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그때는 설마 개정안이 통과될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사실 기존에 ‘응급조치’라는 제도가 있는데, 이건 사법적 통제가 가능하다. 일정한 절차를 밟아서 법원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즉각 분리는 그야말로 복불복이다. 그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혹은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이 현장을 보고 그 자리에서 결정한다. 그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방법도 마땅치 않다. 분리 기간이 얼마나 될지도 알 수 없다. 어떠한 법률적 통제도 없이 국가가 아이들을 가정에서 막 빼올 수 있도록 하는 이런 법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어떤 점에서 문제가 되나?

‘법률유보의 원칙’이라는 게 있다. 사람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행정처분은 반드시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즉각 분리는 법에서 정하지 않은 내용까지 과하게 매뉴얼에 의존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책임을 질 건지 굉장히 모호해진다. 복지부에 이야기하면 항상 ‘지침을 마련하겠다’ ‘현장에 전달하겠다’고 하지만, 법의 영역에 들어가야 예산이 생기고 시스템이 마련될 거 아닌가.

그런데도 해당 법이 통과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위헌적인 법안이 통과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다. 법안 대상이 아동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따질 수가 없다. 아이는 ‘내가 어떤 절차에 의해 여기에 있는 것인가’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는가’ ‘그런 결정을 하는 자는 누구인가’ ‘이의는 어떻게 제기할 수 있는가’ 등을 질문하기 힘들다.

만약 이 법의 대상이 어른이라면 절대 통과될 수 없었을 거다. 예를 들어 직장 내 괴롭힘을 두 번 당하면 즉각 분리되어 오늘부터 당장 새로운 직장에 가서 일해야 된다고 생각해보라. 그것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납득하기 어렵지 않나. 아동에게는 인생이 뒤바뀔 만큼 중요한 일이지만, 어른들 입장에서 즉각 분리는 나중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제도에 가깝다. 일단 분리해놓으면 사망사건은 안 일어나니까.

제2의 정인이 사건을 막는 게 핵심 아닌가.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첫째, 아동이 더 이상 학대당하지 않는 건 최소한의 삶의 조건일 뿐이다. 아동에게 ‘보호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시설로 데려왔으면, 최소한이 아닌 최대한의 행복을 보장해줘야 한다.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눈높이에 맞춰서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아이가 앞으로 어떤 집에서 누구와 함께 지내고 싶어 하는지 세심하게 욕구를 파악해 보호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체가 새로운 폭력이고 학대다. 지금은 시설로 들어간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확인할 길이 없다. 한마디로 ‘브레이크’ 장치가 없다. 교도소에서도 편지와 면회는 가능하지 않나. 갑자기 분리된 아이는 수감자보다 못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둘째, 빠져나갈 사람들은 다 빠져나간다. 소위 ‘힘 있고 돈 많은’ 사람들은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와서 아동이 즉각 분리돼도 변호사를 고용해 강하게 대응한다. 그러면 행정기관 측에서도 버틸 명분이 없다. 앞서 말했듯 법 자체가 허술해서 대부분 매뉴얼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설에 남아 있는 아이들은 대체로 가난하거나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은 부모의 자녀들이다. 허술하고 브레이크 없는 제도가 돌아가면서 빠져나갈 애들은 다 빠져나가고, 걸린 애들만 계속 갈려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흐엉 씨 사례는 보기 드문 사건 아닌가?

물론 이주여성이라는 점에서 특이하긴 하다. 하지만 조금 더 시야를 넓혀보면, 패턴이 나온다. 주로 이 제도의 타깃이 되는 패턴이. 마치 정부가 은연중에 이런 신호를 주고 있는 것 같다. ‘가난하고 배운 거 없으면 애 낳지 말고 키우지 마.’ 충격적이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공감한다. ‘감히 저런 사람이 애를 키워?’ 그러니까 정말 타자화하기 쉬운 거다. ‘애가 폭행당하고 있는데 분리를 안 해?’ 이것도 또 다른 타자화다. 폭행 혹은 성추행당하면서 사느니 낯선 곳에 가더라도 목숨만 붙어 있고 밥 세끼 잘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아주 지독한 타자화다. 내 인생이 아니니까 쉽게 말할 수 있는 거다. 만약 저게 나의 어릴 적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안 맞는 게 전부가 아니다. 한 인간의 존엄을 보장해줘야 한다. 국가에서 최소한만 해주면 알아서 클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 이런 정책을 만들어냈다.

그럼 어떻게 바꿔야 할까.

무엇보다 사법적 통제가 가능하도록, 절차를 예측할 수 있도록 법을 보완해야 한다. 지금은 한번 분리되면 아이가 언제 일상으로 복귀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또 아이가 욕구를 표현할 수 있고, 관계자들도 아이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법제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부모와의 정서적 유대가 강한 아이가 분리 결정을 힘들어한다면, 통제 가능한 안전한 환경 속에서나마 제한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해줘야 하지 않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는 죄인이 아니다.

김순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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