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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홍성훈 (16·끝) 남은 인생, 하나님 찬양하는 악기 만드는 일에 헌신

2021.05
10

본문

최근 처음 뵌 한 목사님이 내게 뜬금없이 “홍 선생님이 선교사라는 걸 알고 있습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나도 모르게 “저는 선교사는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집에 돌아오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의 일 자체가 선교가 되도록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분을 통해 내게 말씀하셨다는 걸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국내에서 유일한 파이프오르간 제작가란 이유로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성과도 없진 않았다. 잘한 부분이 드러나서 세상에 드러나는 게 자랑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번 ‘역경의 열매’를 통해 그동안 이뤄낸 것보다는 그 과정에서 겪은 굴곡진 삶, 그리고 이를 해결하고 그 길을 인도해 가신 하나님을 말하고 싶었다.

지난 20년 동안 파이프오르간의 한국화는 현재 30~40%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진 유럽의 파이프오르간 역사에 비춰볼 때 엄청난 속도다. 혼자서는 결코 해낼 수 없었을 여정이었다. ‘홍매화오르겔’과 ‘나비오르겔’에 매화와 나비를 그려 넣은 한국채화 작가 안명희 선생, 경첩을 제작한 장석 기능전수자 양현승 선생, ‘블루오르겔’의 칠보 작업을 맡았던 ‘금하칠보’의 박수경 작가 등 한국적인 파이프오르간을 만드는 일에 예술가들이 자기 일처럼 온 힘을 보탰다. 또 부족한 남편의 가장 든든한 동역자가 되어 준 아내, 그리고 중보기도와 후원으로 함께 해주신 많은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길은 여전히 험난하기만 하다. 당장 제작소부터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양평의 제작소를 빌려주고 계신 장로님께서 선교의 뜻을 품고 큰 결단을 해주셨기에 그동안 우여곡절 가운데 감사히 사용할 수 있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제작소 용지를 팔아야 하게 된 것이다.

파이프오르간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오롯이 제작이란 본연의 목적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제작소 문제란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파이프오르간이 한국으로 들어와서 우리의 문화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기에 더욱 갈급한 심정이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강권적으로 시키셔서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제작소 부지 문제로 여기서 멈추게 되는 것일까.

새벽마다 다시 엎드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구한다. 이제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분명히 이 일 또한 인도해 주시리라 믿는다. 지금은 세상의 온갖 타락의 소리로 무너지는 한국교회를 되살리고, 주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늘의 소리인 파이프오르간이 제 역할을 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는 나의 남은 인생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악기를 만드는 일에 계속해서 헌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낙망치 않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그분의 능하신 오른팔에 의지해 선하신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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