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관의 성조기가 내려졌다”…美, 치욕의 ‘아프간 탈출’
2021.08
16
뉴스관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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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의 무덤' 아프간, 미국 대사관 깃발이 내려졌다.
아프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장악한 탈레반 (출처:알자지라 방송, AP)
탈레반이 결국 아프간 수도 카불을 점령했습니다.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진작에 카불을 탈출했습니다. 탈레반은 이미 아프간 대통령궁에 진입했습니다. 미국 대사관은 자국민들에게 급히 대피 명령을 내렸습니다. 미국 헬기가 직원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대사관 상공을 왔다갔다하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미국 군사전문지 성조지의 로렌스 기자는 미국 대사관의 스탭들이 성조기가 불타지 않도록 국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촬영해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미 대사관 직원들이 탈레반의 선전에 이용될 수 있는 성조기와 물품을 없애거나 조치를 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겁니다. 현지 대사관은 탈출 전 기밀자료를 태우고 분쇄하는 작업도 바쁘게 진행했다고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불 시내 미국 대사관의 성조기가 내려졌습니다. 미국의 최장기 전쟁, 20년의 아프간전 종료와 철군을 발표한지 불과 넉 달 만입니다. 당초 바이든 정부는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에 적어도 6개월이나 1년이 걸릴 거라 봤었지만, 이달 말로 예정된 미 군 철수가 끝나기도 전 아프간은 함락됐습니다.
미군 기지와 대사관을 내버리고 도망치듯 아프간을 떠나는 미군과 외교관들의 모습에서 미국인들은 자연스레 1975년 '사이공 탈출'을 떠올립니다. 베트남전 패전 직전인 1975년 4월 30일 새벽, 그레이엄 마틴 주월 미국 대사가 성조기를 내리고 사이공 미 대사관을 떠난 데 이어, 미 해병대가 대사관 내 주요 시설물을 파괴하고 마지막으로 헬기로 베트남을 떠났던 사건입니다. 초강대국 미국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긴 30여 년 전의 사건이 다시 소환되고 있습니다.
■ "잘못된 정보로 섣부른 철군"..."트럼프의 유산"
미국 정부는 '사이공 탈출'과 이번 대피는 분명히 다르다며 해명했습니다.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CNN 방송에서 "20년 전 아프간 전을 시작했을 때, 우리의 목표는 9.11에 미국을 공격한 사람들을 다루고, 다시는 미국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성공했다"고 강조했습니다. "1년, 혹은 5년 더 아프간에 더 남아있는 것은 우리의 국익에 맞지 않는다"며 철군 정당성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당혹감은 곳곳에서 엿보입니다. 탈레반이 이렇게 빨리 아프간 전역을 점령할 줄도, 20년을 들여 군사력을 뒷받침해줬던 아프간 정부가 이렇게 빨리 무너질 줄도 미리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한 달 전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백악관에서 열린 질의응답에서 아프간 정부 붕괴와 탈레반 점령 가능성은 낮다며 '사이공 탈출'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었습니다.
당장 미국 야권에서 정부의 부족한 정보력이 섣부른 철군을 불렀다고 비판에 나선 이유입니다.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인 스티브 스컬리스 하원의원은 어제(15일, 현지시간) 오전 CBS 방송 '페이스 더 네이션'에서 "몇 주 전만 해도 바이든 행정부의 정보당국은 지금 일어나는 일과 완전히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정보당국이 엄청난 실수를 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정부도 오판을 시인했습니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어제(현지시간, 15일) "그동안 수십억 달러를 아프간 정부군에 투자했고, 탈레반이 갖지 못한 공군과 병력 30만 명을 증강했지만, 그 군대가 아프간을 지킬 수 없다는 걸 알게 됐고 그 일이 예상보다 더 빨리 일어났다"며 오판을 시인했습니다.
다만 미국 정부는 철수 시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미 결정해놓은 것을 따르는 것 뿐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오스틴 국방장관과 블링컨 국무장관은 의회 브리핑에서 왜 탈레반이 활동하지 않는 겨울 대신 지금을 철군 시점으로 택했느냐는 야당의 추궁에 "작년에 트럼프 행정부가 5월 1일까지 모든 외국군을 철수시키기로 한 합의를 맺었다. 미국이 시한을 지키지 않는다면 탈레반은 전쟁을 재개했을 것이고 미국은 병력 수만 명을 배치해야 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전했습니다.
스컬리스 의원은 이 주장에 "트럼프 대통령은 조건에 근거한 합의를 했고 그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았는데도 바이든 대통령이 빠져나오는 것을 결정했다"고 반박했습니다. 향후 정치권에서의 긴 논쟁이 이어질 전망입니다.
■ 미군 증원, 또 증원..."철군 계획 그대로, 아프간은 스스로를 책임져야"
미국은 지난 12일, 안전한 철군을 위해 군 병력 3천 명 파견을 발표한 데 이어, 어제 바이든 대통령이 성명을 통해 병력을 5천 명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나 미군의 임무를 위험에 빠뜨리는 어떠한 행동도 신속하고 강력한 미군의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철군 계획을 변경하진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탈레반이 미국인 철수를 방해만 않는다면 아프간이 어떤 상황에 처하든 철수는 강행할 것이라고 못박았습니다.
아프간 철군은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공약입니다. 지난 5월 퀴니피엑 설문조사에서는 미국인 62%가 철군에 찬성했습니다. 바이든 정부 관계자들은 그간 "아프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아프간 지도자 스스로 싸워야 한다"며 반복적으로 철군의 정당성을 주장해 왔습니다.
다만, 이번 철군이 국제사회에 줄 메시지에 대해서는 향후 논란이 이어질 전망입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전 세계 사람들이 미국의 장기적인 안보 약속에 의존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당시 글로벌 리더십 회복을 약속하며 내걸었던 슬로건,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이 미국의 국익에만 신경쓴 '선별적 복귀'를 말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 거라는 지적입니다.
채강석 기자.
아프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장악한 탈레반 (출처:알자지라 방송, AP)
탈레반이 결국 아프간 수도 카불을 점령했습니다.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진작에 카불을 탈출했습니다. 탈레반은 이미 아프간 대통령궁에 진입했습니다. 미국 대사관은 자국민들에게 급히 대피 명령을 내렸습니다. 미국 헬기가 직원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대사관 상공을 왔다갔다하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미국 군사전문지 성조지의 로렌스 기자는 미국 대사관의 스탭들이 성조기가 불타지 않도록 국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촬영해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미 대사관 직원들이 탈레반의 선전에 이용될 수 있는 성조기와 물품을 없애거나 조치를 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겁니다. 현지 대사관은 탈출 전 기밀자료를 태우고 분쇄하는 작업도 바쁘게 진행했다고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불 시내 미국 대사관의 성조기가 내려졌습니다. 미국의 최장기 전쟁, 20년의 아프간전 종료와 철군을 발표한지 불과 넉 달 만입니다. 당초 바이든 정부는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에 적어도 6개월이나 1년이 걸릴 거라 봤었지만, 이달 말로 예정된 미 군 철수가 끝나기도 전 아프간은 함락됐습니다.
미군 기지와 대사관을 내버리고 도망치듯 아프간을 떠나는 미군과 외교관들의 모습에서 미국인들은 자연스레 1975년 '사이공 탈출'을 떠올립니다. 베트남전 패전 직전인 1975년 4월 30일 새벽, 그레이엄 마틴 주월 미국 대사가 성조기를 내리고 사이공 미 대사관을 떠난 데 이어, 미 해병대가 대사관 내 주요 시설물을 파괴하고 마지막으로 헬기로 베트남을 떠났던 사건입니다. 초강대국 미국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긴 30여 년 전의 사건이 다시 소환되고 있습니다.
■ "잘못된 정보로 섣부른 철군"..."트럼프의 유산"
미국 정부는 '사이공 탈출'과 이번 대피는 분명히 다르다며 해명했습니다.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CNN 방송에서 "20년 전 아프간 전을 시작했을 때, 우리의 목표는 9.11에 미국을 공격한 사람들을 다루고, 다시는 미국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성공했다"고 강조했습니다. "1년, 혹은 5년 더 아프간에 더 남아있는 것은 우리의 국익에 맞지 않는다"며 철군 정당성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당혹감은 곳곳에서 엿보입니다. 탈레반이 이렇게 빨리 아프간 전역을 점령할 줄도, 20년을 들여 군사력을 뒷받침해줬던 아프간 정부가 이렇게 빨리 무너질 줄도 미리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한 달 전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백악관에서 열린 질의응답에서 아프간 정부 붕괴와 탈레반 점령 가능성은 낮다며 '사이공 탈출'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었습니다.
당장 미국 야권에서 정부의 부족한 정보력이 섣부른 철군을 불렀다고 비판에 나선 이유입니다.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인 스티브 스컬리스 하원의원은 어제(15일, 현지시간) 오전 CBS 방송 '페이스 더 네이션'에서 "몇 주 전만 해도 바이든 행정부의 정보당국은 지금 일어나는 일과 완전히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정보당국이 엄청난 실수를 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정부도 오판을 시인했습니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어제(현지시간, 15일) "그동안 수십억 달러를 아프간 정부군에 투자했고, 탈레반이 갖지 못한 공군과 병력 30만 명을 증강했지만, 그 군대가 아프간을 지킬 수 없다는 걸 알게 됐고 그 일이 예상보다 더 빨리 일어났다"며 오판을 시인했습니다.
다만 미국 정부는 철수 시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미 결정해놓은 것을 따르는 것 뿐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오스틴 국방장관과 블링컨 국무장관은 의회 브리핑에서 왜 탈레반이 활동하지 않는 겨울 대신 지금을 철군 시점으로 택했느냐는 야당의 추궁에 "작년에 트럼프 행정부가 5월 1일까지 모든 외국군을 철수시키기로 한 합의를 맺었다. 미국이 시한을 지키지 않는다면 탈레반은 전쟁을 재개했을 것이고 미국은 병력 수만 명을 배치해야 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전했습니다.
스컬리스 의원은 이 주장에 "트럼프 대통령은 조건에 근거한 합의를 했고 그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았는데도 바이든 대통령이 빠져나오는 것을 결정했다"고 반박했습니다. 향후 정치권에서의 긴 논쟁이 이어질 전망입니다.
■ 미군 증원, 또 증원..."철군 계획 그대로, 아프간은 스스로를 책임져야"
미국은 지난 12일, 안전한 철군을 위해 군 병력 3천 명 파견을 발표한 데 이어, 어제 바이든 대통령이 성명을 통해 병력을 5천 명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나 미군의 임무를 위험에 빠뜨리는 어떠한 행동도 신속하고 강력한 미군의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철군 계획을 변경하진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탈레반이 미국인 철수를 방해만 않는다면 아프간이 어떤 상황에 처하든 철수는 강행할 것이라고 못박았습니다.
아프간 철군은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공약입니다. 지난 5월 퀴니피엑 설문조사에서는 미국인 62%가 철군에 찬성했습니다. 바이든 정부 관계자들은 그간 "아프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아프간 지도자 스스로 싸워야 한다"며 반복적으로 철군의 정당성을 주장해 왔습니다.
다만, 이번 철군이 국제사회에 줄 메시지에 대해서는 향후 논란이 이어질 전망입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전 세계 사람들이 미국의 장기적인 안보 약속에 의존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당시 글로벌 리더십 회복을 약속하며 내걸었던 슬로건,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이 미국의 국익에만 신경쓴 '선별적 복귀'를 말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 거라는 지적입니다.
채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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