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가 검사라 애써 수사하지 않은 사건”
20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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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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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9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오른쪽)이 서울동부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학의 보고서〉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듣기 위해 전문성과 성별을 고려해 변호사 4명을 섭외했다. 이들은 2013년 1차 수사 자체가 부실했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김학의 사건’에서는 전례 없는 일이 유독 많았다. 같은 사건을 두고 2013년, 2014년, 2019년 세 차례나 검찰이 수사했다. 1차 수사를 시작한 경찰이 신청한 통신사실 조회 4회, 압수수색영장 2회, 체포영장 2회, 출국금지 요청 2회가 검찰에서 반려됐다. 검찰은 2013년 1차 수사, 2014년 2차 수사에서 모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무혐의 처분했다.
사건이 처음 불거진 뒤 6년이 지난 2019년, 법무부의 검찰과거사위원회가 ‘김학의 사건’을 조사 목록에 올렸다. 검찰의 부끄러운 과거를 반성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권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검찰과거사위원회 권고에 따라 2019년 3차 수사가 진행됐다. ‘김학의 사건’을 조사한 대검 산하 과거사 진상조사단은 1249쪽짜리 〈김학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변호사들은 이 보고서를 어떻게 평가할까?
〈hbs뉴스광장〉은 〈김학의 보고서〉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듣기 위해 전문성과 성별을 고려해 변호사 4명을 섭외했다. 검사 출신 변호사, 판사 출신 변호사, 재심 사건을 다뤘던 변호사, 젠더 관련 사건을 다뤘던 변호사다. 이들은 익명 인터뷰를 조건으로 〈김학의 보고서〉 평가에 응했다. 〈hbs뉴스광장〉은 〈김학의 보고서〉에 인용된 2013년 1차 수사 자료에 주목해, ‘김학의 사건’까지 평가해달라고 요청했다.
1차 수사 자료를 검토한 변호사들은 2013년 수사 자체가 부실했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변호사들은 “‘김학의 사건’에서 검찰 고위직 출신인 김학의 대신 다른 직업군 인사가 연루되었다면 이렇게 수사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김학의 사건’은 “피의자가 검사라서 애써 검찰이 수사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변호사들은 말했다.
2013년, 2014년 두 차례나 ‘혐의 없음’으로 종결된 ‘김학의 사건’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권력기관이 견제받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는 대표 사례다. 그렇기에 ‘김학의 사건’은 더 이상 ‘개인 김학의’가 아닌 ‘김학의와 검사들’ 사건이다. 하지만 2019년 3차 수사팀은 김학의·윤중천 두 사람만 수사했다. 1차·2차 수사팀에 대한 수사 필요성을 외면했다.
〈김학의 보고서〉 전문을 검토한 변호사들을 개별 인터뷰한 뒤 방담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이들에게 종이로 제공된 〈김학의 보고서〉는 모두 회수했다. 김학의 전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씨 호칭은 생략했다. 다만 변호사들 사이에서 ‘김학의 사건’을 성폭행으로 볼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수차례 법리적 공방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 변호사들의 견해 차이를 그대로 반영했다.
검사·변호사·교수로 이뤄진 대검 산하 과거사 진상조사단은 “검찰의 부실 수사는 사건 진상의 암장을 초래하였음”이라고 결론 내렸다.
검사 출신 변호사:이 사건에서 제일 중요한 건 ‘김학의’라는 고위 검찰 간부가 여러 차례에 걸쳐 성접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2013년 1차 수사 때부터 인정된다. ‘김학의 동영상’ 이런 걸 떠나서, 성접대 사실이 관련자 진술로 명백히 인정된다. 고위 검찰 간부(김학의)가 사업가(윤중천)에게 성접대를 받았다? 당연히 수사 검사라면 뇌물 혐의를 의심해야 한다. 경찰이 송치한 성폭행 혐의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았다고 사건을 끝낼 게 아니라, 성접대 뇌물 혐의를 집중적으로 수사해 파고들었어야 했다.
재심 사건 변호사:성접대가 뇌물이라는 판례는 엄청 많다. 법 공부할 때 시험문제로 자주 나왔다. 뇌물(賂物)이라는 단어의 ‘물’자가 물건(物件)의 ‘물’자라서, 성접대가 왜 물건이냐고 생각할 수 있어서다. 성접대는 향응으로 뇌물에 포함된다. 수사는 크게 두 갈래다. 고소·고발이 들어오거나, 범죄를 인지했을 때 한다. 성폭행 혐의 고소로 수사가 시작되었어도, 직무 관련 범죄로 인지해야 할 상황이 굉장히 많다. 과거 길거리에서 음란행위를 했던 검사장 사건은, 성범죄라도 직무 관련성이 없다. 그런데 ‘김학의 사건’은 김학의뿐 아니라 심지어 윤중천 별장에 간 것으로 의심되는 검사가 윤중천 사건 결재 라인에 있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직무 관련성을 의심해 뇌물 혐의를 수사해야 한다.
젠더 사건 변호사:윤중천한테 접대를 받은 사람이 김학의 한 명이겠나. 아니다. 검사 이름도 여럿 거론된다. 게다가 평소 윤중천이 성관계 동영상을 찍는 습벽이 있다고 했는데, 드러난 건 ‘김학의 동영상’ 하나다. 그래서 수사를 하지 않은 게 아닐까. 압수수색하면 뭐라도 나올까 봐 피한 것 같다. 검찰 조직이 흔들리는 사건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검사가 연루된 범죄가 발각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건이다. 연루된 당사자가 김학의가 아니라 대통령이었다면 검찰은 9족을 털었을 거다. 9족의 반려견에, 반려견을 치료하는 의사까지, 통신·계좌 뭐든 전부 다 추적했을 거다.
뇌물죄는 보통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 입증이 어렵지 않나?
재심 사건 변호사:그래서 수사를 해야 한다. 뇌물 혐의 수사에서 직무 관련성은 고위직일수록 법원에서 잘 인정되지 않는다. 일반인 사이 뇌물은 인과관계가 즉자적이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돈을 줘서 한번 봐달라는 식이다. 고위직일수록 당장 필요하진 않아도 언젠가를 위해서 보험용으로 돈을 준다. 미래 대가성을 염두에 두고 ‘스폰’을 한다. 그래서 대가성이 구체적이고 정확하지 않아서 무죄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김학의 사건’은 2013년에 제대로 수사했으면 (뇌물 증거가) 엄청 나왔을 것 같다. 〈김학의 보고서〉를 보면 진술도 많고, 계좌 관련 내용도 많이 나온다. 보통 검사들은 인지 사건을 정말 하고 싶어 한다. 1차 수사를 담당한 당시 윤재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부장검사는 조양은 등 조폭 사건 수사로 유명하다. 윤 부장검사는 인지 사건을 많이 해봤을 텐데, 이 건에서는 인지 본능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딱 경찰이 송치한 성폭행 혐의 판단만 하고 끝냈다.
검사 출신 변호사:수사에서 제일 중요한 게 압수수색이다. 검사도 압수수색을 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뭐가 나올지 모른다. 기록이나 메모 한 장, 한 줄에서 나온 증거를 물고 늘어져서 기소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이런 압수수색이 가장 필요한 범죄가 뇌물 사건이다. 성폭행 혐의로만 수사하니 압수수색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훨씬 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성폭행 혐의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만 특정하면 되니까. 그런데 뇌물 혐의로 수사하면 전방위로 광범위하게 압수수색을 해야 한다. 계좌추적도 해야 하고, 통신 관련 압수수색도 해야 한다. 〈김학의 보고서〉를 보면서 내가 수사 검사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봤다. 당연히 뇌물 혐의로 수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현직 검사 신분으로 검찰 조직을 겨누는 뇌물 수사를 할 수 있었을까? 자신이 없더라. 2013년 수사 검사도 사건의 성격상(박근혜 정부 초기 고위 검찰 간부가 연루된 사건) 운신의 폭이 굉장히 좁았을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사건은 청와대까지 매일 보고된다. 내가 검찰에 있을 때 ‘김학의 사건’보다는 세간의 주목을 덜 받은 사건을 처리한 적이 있다. 대기업이 연루된 사건이었는데 아침저녁으로 매일 위에 보고했다. 조사 내용을 진짜 하나하나 전부 다 보고했다. ‘김학의 사건’은 내 경험상 수사 방향도 정해진다고 봐야 한다. 수사 검사는 그 틀 안에서 수사했을 것이다. 개인의 소신을 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수사를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다?
검사 출신 변호사:아마 이런 식이었을 거다. 부장·차장검사는 내용을 다 파악한 다음 주임검사에게 ‘여자들 진술 어때?’ ‘여자들이 성폭행 당했다면서 왜 자꾸 별장을 가? 자기 친구도 데리고 가고?’라며 여자들을 믿을 수 없으니, 여성들을 더 탄핵하라는 방향으로 갔을 거다. 그때 누가 ‘그럼 성접대를 뇌물로 봐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말했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얼버무리거나 혹은 ‘그거 입증될까?’라고 회의적으로 반응하고, 아니면 까놓고 ‘대검 입장이 이렇다. 이런 식으로 하자’고 했을 수도 있다.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수사를 안 한 사건이다. 일반 사건은 수사 검사도 소신 있게 한다. 비리를 캐내는 수사는 잘하라고 격려받는데, 이런 건은 굉장히 부담되는 사건이다.
판사 출신 변호사:설사 검찰이 여성들이 주장하는 성폭행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성접대라고만 봤더라도, 둘 다 기소할 수 있다. 주위적 기소(주된 범죄사실)를 성폭행으로 하고, 예비적 기소(주위적 공소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추가하는 공소사실)를 뇌물로 하면 된다. 〈김학의 보고서〉를 살펴보니, 결국 처음부터 김학의를 봐주려고 했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다. 심지어 1차·2차 수사팀은 ‘김학의 동영상’ 속 김학의를 ‘김학의’라고 특정하지 않았다. 아마 ‘김학의 동영상’이 없었다면, 검찰은 오히려 여자들을 무고로 처벌했을 것이다. (수사조차 개시하지 못하고) 김학의도 법무부 차관을 계속했을 거다.
성폭력 혐의에 대한 판단은 〈김학의 보고서〉에서 엇갈렸다.
검사 출신 변호사:‘김학의 보고서의 2안(‘나’를 읽고 배심원이 되어주세요 기사 참조)’에선 성폭행 부분을 좀 더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수사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물론 그렇게 할 필요는 있었겠지만, 한두 명도 아니고 등장하는 모든 여성이 다 그렇게 계속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입증이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 성폭력 혐의 구성이 어렵지만 뇌물로 갔어야 한다는 1안에 더 동의한다.
재심 사건 변호사:보고서에 나온 기록상으로는 성폭력 부분이 ‘혐의 없음’으로 가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과거부터 좀 의문이 들었던 게, 형법의 폭행·협박에서 성범죄를 가장 좁게 해석한다. 예를 들어, 폭행·협박으로 공무집행 방해를 저지르면 법원은 폭넓게 인정한다. 공무원한테 전화해서 “내가 네 인사권자와 상사를 잘 알고 있는데, 이거 안 하면 너 승진 못하게 할 거야”라고 말한 게 협박으로 인정된 판례가 있다. 폭행·협박을 가장 좁게 보는 게 강간죄다. 강간죄에서 폭행·협박은 항거가 불가능하거나 항거가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만 인정한다. ‘김학의 사건’에서 피해자들은 ‘내가 어떤 강압적인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구체적으로 진술을 하지만, 기존 판례에 비춰보면 항거 불능은 아닌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판사 출신 변호사:1안은 이미 1990년대에 폐기된 강간죄의 보호법익인 정조를 여전히 보호법익인 듯 전제하고 논리를 펼쳤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1안의 전제는 ‘접대를 했으면 성폭력이 아니다’라는 건데, 틀렸다. 성폭력의 보호법익은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바뀐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도대체 몇 년도 판례를 쓴 거냐. 2000년대 이전에는 성범죄를 당한 아동에게도 왜 짧은 치마를 입었느냐고 지적하며 무죄를 주는 판사가 있었다. 조두순 사건 이후에는 많이 바뀌었는데, 여전히 성범죄를 당한 성인 여성에 대해서는 판사·검사의 인식이 부족하다. 적어도 이 사건에서, (여성들이) 윤중천에게 당한 첫 1~2회의 경우는 (기존 판례로 판단해도) 성폭행으로 볼 여지가 있다. 정신과·산부인과 진료기록 같은 객관 증거가 있음에도 검찰은 김학의·윤중천을 수사하기보다는, 피해 여성의 진술을 탄핵하는 데 집중했다.
젠더 사건 변호사:양태를 쪼개가지고 봐야 한다. 이건 특별한 성인지 감수성이 필요한 사건이 아니다. 설사 성매매 여성이라 하더라도 모든 관계를 다 허락하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상대방이 합의되지 않은 특정 체위를 요구한다거나, 콘돔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면 거부할 수 있다. 그럴 때 강제로 행위하면 강간으로 기소된다. 그 상황에서 이탈할 자유가 보장이 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자유의사에 의한 행위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성폭력을 봐야 한다는 게 최근 추세다. 쪼개서 기소할 수 있는데도 기소를 안 하려고 작정하니, 아예 수사를 안 했다. 예를 들어, 여성들은 김학의·윤중천이 성관계 사진과 동영상을 서로 찍어줬다고 수사기관에 진술했다. 보통 실무에서는 성범죄 피해 여성이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동영상으로 찍어서 빨간 불빛이 보였어요’ 이런 진술만 해도 바로 압수수색을 한다. 빨리 찾지 않으면 피해 영상이나 사진의 전파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물론 형사사법 절차상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 무죄추정이 기본이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피해자 진술에 부합하는 객관적인 정황증거가 있었고, 그걸 통해 더 수사할 수 있었는데도 안 했다는 거다. 제대로 수사하고 무죄나 무혐의가 났다면, 피해자도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김학의 사건’에서 검찰은 피해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붙이며 2차·3차 가해를 했다.
젠더 사건 변호사:여성들의 진술이 굉장히 구체적이다. 당시 김학의는 윤중천이란 사람 자체를 모른다고 했는데, 윤중천을 통해 김학의를 만났다는 여성들은 김학의의 특징을 자세히 말한다. 심지어 특정 신체 부위에 대해 진술한다. 이럴 때는 압수수색을 통해 신체 감정을 한다. 결정적인 진술이기 때문이다. 수사로 확인 가능하다. 여성들의 말이 사실로 확인되면 윤중천을 모른다고 한 김학의 진술은 거짓일 가능성이 큰데, 그런 수사는 검찰이나 경찰 모두 안 했다.
‘김학의 사건’의 본질은 뭐라고 보나?
판사 출신 변호사:김학의·윤중천을 보호하기 위해 피해자를 사라지게 만든 사건이다. 피해 여성의 어떤 특성을 근거로 모욕에 가까운 의심을 했다. 재산범죄에서 잘 하지 않는 피해자 탓이 유독 성범죄에서는 잦다. 그중에서도 이 사건은 이례적일 정도로 심하다. 이렇게 편파적으로 수사하면 검찰은 누가 견제하나. 뒤늦게라도 검찰이 과거사 조사를 한다고 했지만, 성폭력이 예민하게 다퉈지는 사건이면 과거사위원회와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과반수를 여성으로 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젠더 사건 변호사:여성들을 성적 도구로 삼은 부분은 다른 축으로 수사를 해야 했다. 핵심은 윤중천이 자기 돈을 들여서 주말마다 별장에 여자들을 불렀고, 술과 음식을 병원장, 사업가, 고위 공무원 등에게 접대했다는 점이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얻어내려고 했던 게 뭐였는지 파고들었어야 했다. 〈김학의 보고서〉를 보면 1차 수사팀은 윤중천의 배임 공모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 한 저축은행에서 320억원을 불법 대출받은 사건이다. 돈을 빌려준 저축은행 전무는 배임 혐의로 실형을 살았는데, 윤중천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불법 대출 사건이 바로 ‘김학의 사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자기 사업에 도움이 되는 이런 것(불법 대출)을 받기 위해 뇌물로 로비를 했고, 결과적으로 처벌받지 않고 빠져나갔다.
재심 사건 변호사:내부 개혁은 어디에서나 어렵다. 꼭 검찰만 그런 건 아니다. 그런데 검찰은 그걸 덮을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서로 견제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 ‘김학의 사건’을 다른 조직에서 했으면, 조직 보위는 생각도 못했을 거다. 그러면서 권력기관 간 견제와 균형이 생기는 건데, 당시(2013년 1차 수사, 2014년 2차 수사, 2019년 3차 수사)만 해도 검찰이 가진 권한이 많았다(영장청구권·수사개시권·수사지휘권·수사종결권·기소권). 조직의 권한을 나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자연스레 든다.
검사 출신 변호사:이런 사건을 계기로 검찰 조직이 자성하고 바로서야 한다. 권한 분산도 중요하다. 검사 시절을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다 모여서 내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 그런데 변호사가 되니 안 그런다. 확 달라졌다(웃음). ‘김학의 사건’은 검찰 조직이 부끄러워해야 할 사건이다. 검사 시절, 근무하던 검찰청에서 미성년자 고용 유흥업소를 단속한 적이 있다. 업소 사장을 체포하고 구속했다. 그런데 나중에 검사들이 그 업소에 가서 술 먹고 술값을 안 내더라. 나도 거기에 따라간 적이 있는데, 아직까지도 부끄럽다.
젠더 사건 변호사:양태를 쪼개가지고 봐야 한다. 이건 특별한 성인지 감수성이 필요한 사건이 아니다. 설사 성매매 여성이라 하더라도 모든 관계를 다 허락하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상대방이 합의되지 않은 특정 체위를 요구한다거나, 콘돔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면 거부할 수 있다. 그럴 때 강제로 행위하면 강간으로 기소된다. 그 상황에서 이탈할 자유가 보장이 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자유의사에 의한 행위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성폭력을 봐야 한다는 게 최근 추세다. 쪼개서 기소할 수 있는데도 기소를 안 하려고 작정하니, 아예 수사를 안 했다. 예를 들어, 여성들은 김학의·윤중천이 성관계 사진과 동영상을 서로 찍어줬다고 수사기관에 진술했다. 보통 실무에서는 성범죄 피해 여성이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동영상으로 찍어서 빨간 불빛이 보였어요’ 이런 진술만 해도 바로 압수수색을 한다. 빨리 찾지 않으면 피해 영상이나 사진의 전파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물론 형사사법 절차상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 무죄추정이 기본이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피해자 진술에 부합하는 객관적인 정황증거가 있었고, 그걸 통해 더 수사할 수 있었는데도 안 했다는 거다. 제대로 수사하고 무죄나 무혐의가 났다면, 피해자도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김학의 사건’에서 검찰은 피해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붙이며 2차·3차 가해를 했다.
젠더 사건 변호사:여성들의 진술이 굉장히 구체적이다. 당시 김학의는 윤중천이란 사람 자체를 모른다고 했는데, 윤중천을 통해 김학의를 만났다는 여성들은 김학의의 특징을 자세히 말한다. 심지어 특정 신체 부위에 대해 진술한다. 이럴 때는 압수수색을 통해 신체 감정을 한다. 결정적인 진술이기 때문이다. 수사로 확인 가능하다. 여성들의 말이 사실로 확인되면 윤중천을 모른다고 한 김학의 진술은 거짓일 가능성이 큰데, 그런 수사는 검찰이나 경찰 모두 안 했다.
‘김학의 사건’의 본질은 뭐라고 보나?
판사 출신 변호사:김학의·윤중천을 보호하기 위해 피해자를 사라지게 만든 사건이다. 피해 여성의 어떤 특성을 근거로 모욕에 가까운 의심을 했다. 재산범죄에서 잘 하지 않는 피해자 탓이 유독 성범죄에서는 잦다. 그중에서도 이 사건은 이례적일 정도로 심하다. 이렇게 편파적으로 수사하면 검찰은 누가 견제하나. 뒤늦게라도 검찰이 과거사 조사를 한다고 했지만, 성폭력이 예민하게 다퉈지는 사건이면 과거사위원회와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과반수를 여성으로 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젠더 사건 변호사:여성들을 성적 도구로 삼은 부분은 다른 축으로 수사를 해야 했다. 핵심은 윤중천이 자기 돈을 들여서 주말마다 별장에 여자들을 불렀고, 술과 음식을 병원장, 사업가, 고위 공무원 등에게 접대했다는 점이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얻어내려고 했던 게 뭐였는지 파고들었어야 했다. 〈김학의 보고서〉를 보면 1차 수사팀은 윤중천의 배임 공모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 한 저축은행에서 320억원을 불법 대출받은 사건이다. 돈을 빌려준 저축은행 전무는 배임 혐의로 실형을 살았는데, 윤중천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불법 대출 사건이 바로 ‘김학의 사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자기 사업에 도움이 되는 이런 것(불법 대출)을 받기 위해 뇌물로 로비를 했고, 결과적으로 처벌받지 않고 빠져나갔다.
재심 사건 변호사:내부 개혁은 어디에서나 어렵다. 꼭 검찰만 그런 건 아니다. 그런데 검찰은 그걸 덮을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서로 견제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 ‘김학의 사건’을 다른 조직에서 했으면, 조직 보위는 생각도 못했을 거다. 그러면서 권력기관 간 견제와 균형이 생기는 건데, 당시(2013년 1차 수사, 2014년 2차 수사, 2019년 3차 수사)만 해도 검찰이 가진 권한이 많았다(영장청구권·수사개시권·수사지휘권·수사종결권·기소권). 조직의 권한을 나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자연스레 든다.
검사 출신 변호사:이런 사건을 계기로 검찰 조직이 자성하고 바로서야 한다. 권한 분산도 중요하다. 검사 시절을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다 모여서 내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 그런데 변호사가 되니 안 그런다. 확 달라졌다(웃음). ‘김학의 사건’은 검찰 조직이 부끄러워해야 할 사건이다. 검사 시절, 근무하던 검찰청에서 미성년자 고용 유흥업소를 단속한 적이 있다. 업소 사장을 체포하고 구속했다. 그런데 나중에 검사들이 그 업소에 가서 술 먹고 술값을 안 내더라. 나도 거기에 따라간 적이 있는데, 아직까지도 부끄럽다.
장병하 기자.
〈김학의 보고서〉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듣기 위해 전문성과 성별을 고려해 변호사 4명을 섭외했다. 이들은 2013년 1차 수사 자체가 부실했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김학의 사건’에서는 전례 없는 일이 유독 많았다. 같은 사건을 두고 2013년, 2014년, 2019년 세 차례나 검찰이 수사했다. 1차 수사를 시작한 경찰이 신청한 통신사실 조회 4회, 압수수색영장 2회, 체포영장 2회, 출국금지 요청 2회가 검찰에서 반려됐다. 검찰은 2013년 1차 수사, 2014년 2차 수사에서 모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무혐의 처분했다.
사건이 처음 불거진 뒤 6년이 지난 2019년, 법무부의 검찰과거사위원회가 ‘김학의 사건’을 조사 목록에 올렸다. 검찰의 부끄러운 과거를 반성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권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검찰과거사위원회 권고에 따라 2019년 3차 수사가 진행됐다. ‘김학의 사건’을 조사한 대검 산하 과거사 진상조사단은 1249쪽짜리 〈김학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변호사들은 이 보고서를 어떻게 평가할까?
〈hbs뉴스광장〉은 〈김학의 보고서〉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듣기 위해 전문성과 성별을 고려해 변호사 4명을 섭외했다. 검사 출신 변호사, 판사 출신 변호사, 재심 사건을 다뤘던 변호사, 젠더 관련 사건을 다뤘던 변호사다. 이들은 익명 인터뷰를 조건으로 〈김학의 보고서〉 평가에 응했다. 〈hbs뉴스광장〉은 〈김학의 보고서〉에 인용된 2013년 1차 수사 자료에 주목해, ‘김학의 사건’까지 평가해달라고 요청했다.
1차 수사 자료를 검토한 변호사들은 2013년 수사 자체가 부실했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변호사들은 “‘김학의 사건’에서 검찰 고위직 출신인 김학의 대신 다른 직업군 인사가 연루되었다면 이렇게 수사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김학의 사건’은 “피의자가 검사라서 애써 검찰이 수사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변호사들은 말했다.
2013년, 2014년 두 차례나 ‘혐의 없음’으로 종결된 ‘김학의 사건’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권력기관이 견제받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는 대표 사례다. 그렇기에 ‘김학의 사건’은 더 이상 ‘개인 김학의’가 아닌 ‘김학의와 검사들’ 사건이다. 하지만 2019년 3차 수사팀은 김학의·윤중천 두 사람만 수사했다. 1차·2차 수사팀에 대한 수사 필요성을 외면했다.
〈김학의 보고서〉 전문을 검토한 변호사들을 개별 인터뷰한 뒤 방담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이들에게 종이로 제공된 〈김학의 보고서〉는 모두 회수했다. 김학의 전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씨 호칭은 생략했다. 다만 변호사들 사이에서 ‘김학의 사건’을 성폭행으로 볼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수차례 법리적 공방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 변호사들의 견해 차이를 그대로 반영했다.
검사·변호사·교수로 이뤄진 대검 산하 과거사 진상조사단은 “검찰의 부실 수사는 사건 진상의 암장을 초래하였음”이라고 결론 내렸다.
검사 출신 변호사:이 사건에서 제일 중요한 건 ‘김학의’라는 고위 검찰 간부가 여러 차례에 걸쳐 성접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2013년 1차 수사 때부터 인정된다. ‘김학의 동영상’ 이런 걸 떠나서, 성접대 사실이 관련자 진술로 명백히 인정된다. 고위 검찰 간부(김학의)가 사업가(윤중천)에게 성접대를 받았다? 당연히 수사 검사라면 뇌물 혐의를 의심해야 한다. 경찰이 송치한 성폭행 혐의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았다고 사건을 끝낼 게 아니라, 성접대 뇌물 혐의를 집중적으로 수사해 파고들었어야 했다.
재심 사건 변호사:성접대가 뇌물이라는 판례는 엄청 많다. 법 공부할 때 시험문제로 자주 나왔다. 뇌물(賂物)이라는 단어의 ‘물’자가 물건(物件)의 ‘물’자라서, 성접대가 왜 물건이냐고 생각할 수 있어서다. 성접대는 향응으로 뇌물에 포함된다. 수사는 크게 두 갈래다. 고소·고발이 들어오거나, 범죄를 인지했을 때 한다. 성폭행 혐의 고소로 수사가 시작되었어도, 직무 관련 범죄로 인지해야 할 상황이 굉장히 많다. 과거 길거리에서 음란행위를 했던 검사장 사건은, 성범죄라도 직무 관련성이 없다. 그런데 ‘김학의 사건’은 김학의뿐 아니라 심지어 윤중천 별장에 간 것으로 의심되는 검사가 윤중천 사건 결재 라인에 있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직무 관련성을 의심해 뇌물 혐의를 수사해야 한다.
젠더 사건 변호사:윤중천한테 접대를 받은 사람이 김학의 한 명이겠나. 아니다. 검사 이름도 여럿 거론된다. 게다가 평소 윤중천이 성관계 동영상을 찍는 습벽이 있다고 했는데, 드러난 건 ‘김학의 동영상’ 하나다. 그래서 수사를 하지 않은 게 아닐까. 압수수색하면 뭐라도 나올까 봐 피한 것 같다. 검찰 조직이 흔들리는 사건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검사가 연루된 범죄가 발각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건이다. 연루된 당사자가 김학의가 아니라 대통령이었다면 검찰은 9족을 털었을 거다. 9족의 반려견에, 반려견을 치료하는 의사까지, 통신·계좌 뭐든 전부 다 추적했을 거다.
뇌물죄는 보통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 입증이 어렵지 않나?
재심 사건 변호사:그래서 수사를 해야 한다. 뇌물 혐의 수사에서 직무 관련성은 고위직일수록 법원에서 잘 인정되지 않는다. 일반인 사이 뇌물은 인과관계가 즉자적이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돈을 줘서 한번 봐달라는 식이다. 고위직일수록 당장 필요하진 않아도 언젠가를 위해서 보험용으로 돈을 준다. 미래 대가성을 염두에 두고 ‘스폰’을 한다. 그래서 대가성이 구체적이고 정확하지 않아서 무죄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김학의 사건’은 2013년에 제대로 수사했으면 (뇌물 증거가) 엄청 나왔을 것 같다. 〈김학의 보고서〉를 보면 진술도 많고, 계좌 관련 내용도 많이 나온다. 보통 검사들은 인지 사건을 정말 하고 싶어 한다. 1차 수사를 담당한 당시 윤재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부장검사는 조양은 등 조폭 사건 수사로 유명하다. 윤 부장검사는 인지 사건을 많이 해봤을 텐데, 이 건에서는 인지 본능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딱 경찰이 송치한 성폭행 혐의 판단만 하고 끝냈다.
검사 출신 변호사:수사에서 제일 중요한 게 압수수색이다. 검사도 압수수색을 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뭐가 나올지 모른다. 기록이나 메모 한 장, 한 줄에서 나온 증거를 물고 늘어져서 기소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이런 압수수색이 가장 필요한 범죄가 뇌물 사건이다. 성폭행 혐의로만 수사하니 압수수색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훨씬 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성폭행 혐의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만 특정하면 되니까. 그런데 뇌물 혐의로 수사하면 전방위로 광범위하게 압수수색을 해야 한다. 계좌추적도 해야 하고, 통신 관련 압수수색도 해야 한다. 〈김학의 보고서〉를 보면서 내가 수사 검사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봤다. 당연히 뇌물 혐의로 수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현직 검사 신분으로 검찰 조직을 겨누는 뇌물 수사를 할 수 있었을까? 자신이 없더라. 2013년 수사 검사도 사건의 성격상(박근혜 정부 초기 고위 검찰 간부가 연루된 사건) 운신의 폭이 굉장히 좁았을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사건은 청와대까지 매일 보고된다. 내가 검찰에 있을 때 ‘김학의 사건’보다는 세간의 주목을 덜 받은 사건을 처리한 적이 있다. 대기업이 연루된 사건이었는데 아침저녁으로 매일 위에 보고했다. 조사 내용을 진짜 하나하나 전부 다 보고했다. ‘김학의 사건’은 내 경험상 수사 방향도 정해진다고 봐야 한다. 수사 검사는 그 틀 안에서 수사했을 것이다. 개인의 소신을 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수사를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다?
검사 출신 변호사:아마 이런 식이었을 거다. 부장·차장검사는 내용을 다 파악한 다음 주임검사에게 ‘여자들 진술 어때?’ ‘여자들이 성폭행 당했다면서 왜 자꾸 별장을 가? 자기 친구도 데리고 가고?’라며 여자들을 믿을 수 없으니, 여성들을 더 탄핵하라는 방향으로 갔을 거다. 그때 누가 ‘그럼 성접대를 뇌물로 봐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말했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얼버무리거나 혹은 ‘그거 입증될까?’라고 회의적으로 반응하고, 아니면 까놓고 ‘대검 입장이 이렇다. 이런 식으로 하자’고 했을 수도 있다.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수사를 안 한 사건이다. 일반 사건은 수사 검사도 소신 있게 한다. 비리를 캐내는 수사는 잘하라고 격려받는데, 이런 건은 굉장히 부담되는 사건이다.
판사 출신 변호사:설사 검찰이 여성들이 주장하는 성폭행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성접대라고만 봤더라도, 둘 다 기소할 수 있다. 주위적 기소(주된 범죄사실)를 성폭행으로 하고, 예비적 기소(주위적 공소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추가하는 공소사실)를 뇌물로 하면 된다. 〈김학의 보고서〉를 살펴보니, 결국 처음부터 김학의를 봐주려고 했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다. 심지어 1차·2차 수사팀은 ‘김학의 동영상’ 속 김학의를 ‘김학의’라고 특정하지 않았다. 아마 ‘김학의 동영상’이 없었다면, 검찰은 오히려 여자들을 무고로 처벌했을 것이다. (수사조차 개시하지 못하고) 김학의도 법무부 차관을 계속했을 거다.
성폭력 혐의에 대한 판단은 〈김학의 보고서〉에서 엇갈렸다.
검사 출신 변호사:‘김학의 보고서의 2안(‘나’를 읽고 배심원이 되어주세요 기사 참조)’에선 성폭행 부분을 좀 더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수사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물론 그렇게 할 필요는 있었겠지만, 한두 명도 아니고 등장하는 모든 여성이 다 그렇게 계속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입증이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 성폭력 혐의 구성이 어렵지만 뇌물로 갔어야 한다는 1안에 더 동의한다.
재심 사건 변호사:보고서에 나온 기록상으로는 성폭력 부분이 ‘혐의 없음’으로 가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과거부터 좀 의문이 들었던 게, 형법의 폭행·협박에서 성범죄를 가장 좁게 해석한다. 예를 들어, 폭행·협박으로 공무집행 방해를 저지르면 법원은 폭넓게 인정한다. 공무원한테 전화해서 “내가 네 인사권자와 상사를 잘 알고 있는데, 이거 안 하면 너 승진 못하게 할 거야”라고 말한 게 협박으로 인정된 판례가 있다. 폭행·협박을 가장 좁게 보는 게 강간죄다. 강간죄에서 폭행·협박은 항거가 불가능하거나 항거가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만 인정한다. ‘김학의 사건’에서 피해자들은 ‘내가 어떤 강압적인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구체적으로 진술을 하지만, 기존 판례에 비춰보면 항거 불능은 아닌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판사 출신 변호사:1안은 이미 1990년대에 폐기된 강간죄의 보호법익인 정조를 여전히 보호법익인 듯 전제하고 논리를 펼쳤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1안의 전제는 ‘접대를 했으면 성폭력이 아니다’라는 건데, 틀렸다. 성폭력의 보호법익은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바뀐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도대체 몇 년도 판례를 쓴 거냐. 2000년대 이전에는 성범죄를 당한 아동에게도 왜 짧은 치마를 입었느냐고 지적하며 무죄를 주는 판사가 있었다. 조두순 사건 이후에는 많이 바뀌었는데, 여전히 성범죄를 당한 성인 여성에 대해서는 판사·검사의 인식이 부족하다. 적어도 이 사건에서, (여성들이) 윤중천에게 당한 첫 1~2회의 경우는 (기존 판례로 판단해도) 성폭행으로 볼 여지가 있다. 정신과·산부인과 진료기록 같은 객관 증거가 있음에도 검찰은 김학의·윤중천을 수사하기보다는, 피해 여성의 진술을 탄핵하는 데 집중했다.
젠더 사건 변호사:양태를 쪼개가지고 봐야 한다. 이건 특별한 성인지 감수성이 필요한 사건이 아니다. 설사 성매매 여성이라 하더라도 모든 관계를 다 허락하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상대방이 합의되지 않은 특정 체위를 요구한다거나, 콘돔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면 거부할 수 있다. 그럴 때 강제로 행위하면 강간으로 기소된다. 그 상황에서 이탈할 자유가 보장이 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자유의사에 의한 행위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성폭력을 봐야 한다는 게 최근 추세다. 쪼개서 기소할 수 있는데도 기소를 안 하려고 작정하니, 아예 수사를 안 했다. 예를 들어, 여성들은 김학의·윤중천이 성관계 사진과 동영상을 서로 찍어줬다고 수사기관에 진술했다. 보통 실무에서는 성범죄 피해 여성이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동영상으로 찍어서 빨간 불빛이 보였어요’ 이런 진술만 해도 바로 압수수색을 한다. 빨리 찾지 않으면 피해 영상이나 사진의 전파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물론 형사사법 절차상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 무죄추정이 기본이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피해자 진술에 부합하는 객관적인 정황증거가 있었고, 그걸 통해 더 수사할 수 있었는데도 안 했다는 거다. 제대로 수사하고 무죄나 무혐의가 났다면, 피해자도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김학의 사건’에서 검찰은 피해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붙이며 2차·3차 가해를 했다.
젠더 사건 변호사:여성들의 진술이 굉장히 구체적이다. 당시 김학의는 윤중천이란 사람 자체를 모른다고 했는데, 윤중천을 통해 김학의를 만났다는 여성들은 김학의의 특징을 자세히 말한다. 심지어 특정 신체 부위에 대해 진술한다. 이럴 때는 압수수색을 통해 신체 감정을 한다. 결정적인 진술이기 때문이다. 수사로 확인 가능하다. 여성들의 말이 사실로 확인되면 윤중천을 모른다고 한 김학의 진술은 거짓일 가능성이 큰데, 그런 수사는 검찰이나 경찰 모두 안 했다.
‘김학의 사건’의 본질은 뭐라고 보나?
판사 출신 변호사:김학의·윤중천을 보호하기 위해 피해자를 사라지게 만든 사건이다. 피해 여성의 어떤 특성을 근거로 모욕에 가까운 의심을 했다. 재산범죄에서 잘 하지 않는 피해자 탓이 유독 성범죄에서는 잦다. 그중에서도 이 사건은 이례적일 정도로 심하다. 이렇게 편파적으로 수사하면 검찰은 누가 견제하나. 뒤늦게라도 검찰이 과거사 조사를 한다고 했지만, 성폭력이 예민하게 다퉈지는 사건이면 과거사위원회와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과반수를 여성으로 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젠더 사건 변호사:여성들을 성적 도구로 삼은 부분은 다른 축으로 수사를 해야 했다. 핵심은 윤중천이 자기 돈을 들여서 주말마다 별장에 여자들을 불렀고, 술과 음식을 병원장, 사업가, 고위 공무원 등에게 접대했다는 점이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얻어내려고 했던 게 뭐였는지 파고들었어야 했다. 〈김학의 보고서〉를 보면 1차 수사팀은 윤중천의 배임 공모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 한 저축은행에서 320억원을 불법 대출받은 사건이다. 돈을 빌려준 저축은행 전무는 배임 혐의로 실형을 살았는데, 윤중천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불법 대출 사건이 바로 ‘김학의 사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자기 사업에 도움이 되는 이런 것(불법 대출)을 받기 위해 뇌물로 로비를 했고, 결과적으로 처벌받지 않고 빠져나갔다.
재심 사건 변호사:내부 개혁은 어디에서나 어렵다. 꼭 검찰만 그런 건 아니다. 그런데 검찰은 그걸 덮을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서로 견제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 ‘김학의 사건’을 다른 조직에서 했으면, 조직 보위는 생각도 못했을 거다. 그러면서 권력기관 간 견제와 균형이 생기는 건데, 당시(2013년 1차 수사, 2014년 2차 수사, 2019년 3차 수사)만 해도 검찰이 가진 권한이 많았다(영장청구권·수사개시권·수사지휘권·수사종결권·기소권). 조직의 권한을 나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자연스레 든다.
검사 출신 변호사:이런 사건을 계기로 검찰 조직이 자성하고 바로서야 한다. 권한 분산도 중요하다. 검사 시절을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다 모여서 내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 그런데 변호사가 되니 안 그런다. 확 달라졌다(웃음). ‘김학의 사건’은 검찰 조직이 부끄러워해야 할 사건이다. 검사 시절, 근무하던 검찰청에서 미성년자 고용 유흥업소를 단속한 적이 있다. 업소 사장을 체포하고 구속했다. 그런데 나중에 검사들이 그 업소에 가서 술 먹고 술값을 안 내더라. 나도 거기에 따라간 적이 있는데, 아직까지도 부끄럽다.
젠더 사건 변호사:양태를 쪼개가지고 봐야 한다. 이건 특별한 성인지 감수성이 필요한 사건이 아니다. 설사 성매매 여성이라 하더라도 모든 관계를 다 허락하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상대방이 합의되지 않은 특정 체위를 요구한다거나, 콘돔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면 거부할 수 있다. 그럴 때 강제로 행위하면 강간으로 기소된다. 그 상황에서 이탈할 자유가 보장이 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자유의사에 의한 행위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성폭력을 봐야 한다는 게 최근 추세다. 쪼개서 기소할 수 있는데도 기소를 안 하려고 작정하니, 아예 수사를 안 했다. 예를 들어, 여성들은 김학의·윤중천이 성관계 사진과 동영상을 서로 찍어줬다고 수사기관에 진술했다. 보통 실무에서는 성범죄 피해 여성이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동영상으로 찍어서 빨간 불빛이 보였어요’ 이런 진술만 해도 바로 압수수색을 한다. 빨리 찾지 않으면 피해 영상이나 사진의 전파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물론 형사사법 절차상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 무죄추정이 기본이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피해자 진술에 부합하는 객관적인 정황증거가 있었고, 그걸 통해 더 수사할 수 있었는데도 안 했다는 거다. 제대로 수사하고 무죄나 무혐의가 났다면, 피해자도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김학의 사건’에서 검찰은 피해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붙이며 2차·3차 가해를 했다.
젠더 사건 변호사:여성들의 진술이 굉장히 구체적이다. 당시 김학의는 윤중천이란 사람 자체를 모른다고 했는데, 윤중천을 통해 김학의를 만났다는 여성들은 김학의의 특징을 자세히 말한다. 심지어 특정 신체 부위에 대해 진술한다. 이럴 때는 압수수색을 통해 신체 감정을 한다. 결정적인 진술이기 때문이다. 수사로 확인 가능하다. 여성들의 말이 사실로 확인되면 윤중천을 모른다고 한 김학의 진술은 거짓일 가능성이 큰데, 그런 수사는 검찰이나 경찰 모두 안 했다.
‘김학의 사건’의 본질은 뭐라고 보나?
판사 출신 변호사:김학의·윤중천을 보호하기 위해 피해자를 사라지게 만든 사건이다. 피해 여성의 어떤 특성을 근거로 모욕에 가까운 의심을 했다. 재산범죄에서 잘 하지 않는 피해자 탓이 유독 성범죄에서는 잦다. 그중에서도 이 사건은 이례적일 정도로 심하다. 이렇게 편파적으로 수사하면 검찰은 누가 견제하나. 뒤늦게라도 검찰이 과거사 조사를 한다고 했지만, 성폭력이 예민하게 다퉈지는 사건이면 과거사위원회와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과반수를 여성으로 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젠더 사건 변호사:여성들을 성적 도구로 삼은 부분은 다른 축으로 수사를 해야 했다. 핵심은 윤중천이 자기 돈을 들여서 주말마다 별장에 여자들을 불렀고, 술과 음식을 병원장, 사업가, 고위 공무원 등에게 접대했다는 점이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얻어내려고 했던 게 뭐였는지 파고들었어야 했다. 〈김학의 보고서〉를 보면 1차 수사팀은 윤중천의 배임 공모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 한 저축은행에서 320억원을 불법 대출받은 사건이다. 돈을 빌려준 저축은행 전무는 배임 혐의로 실형을 살았는데, 윤중천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불법 대출 사건이 바로 ‘김학의 사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자기 사업에 도움이 되는 이런 것(불법 대출)을 받기 위해 뇌물로 로비를 했고, 결과적으로 처벌받지 않고 빠져나갔다.
재심 사건 변호사:내부 개혁은 어디에서나 어렵다. 꼭 검찰만 그런 건 아니다. 그런데 검찰은 그걸 덮을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서로 견제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 ‘김학의 사건’을 다른 조직에서 했으면, 조직 보위는 생각도 못했을 거다. 그러면서 권력기관 간 견제와 균형이 생기는 건데, 당시(2013년 1차 수사, 2014년 2차 수사, 2019년 3차 수사)만 해도 검찰이 가진 권한이 많았다(영장청구권·수사개시권·수사지휘권·수사종결권·기소권). 조직의 권한을 나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자연스레 든다.
검사 출신 변호사:이런 사건을 계기로 검찰 조직이 자성하고 바로서야 한다. 권한 분산도 중요하다. 검사 시절을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다 모여서 내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 그런데 변호사가 되니 안 그런다. 확 달라졌다(웃음). ‘김학의 사건’은 검찰 조직이 부끄러워해야 할 사건이다. 검사 시절, 근무하던 검찰청에서 미성년자 고용 유흥업소를 단속한 적이 있다. 업소 사장을 체포하고 구속했다. 그런데 나중에 검사들이 그 업소에 가서 술 먹고 술값을 안 내더라. 나도 거기에 따라간 적이 있는데, 아직까지도 부끄럽다.
장병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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