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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남양유업 오너의 변심과 불신이란 부메랑.

2021.09
11

본문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주식매매계약 해제를 통보했다.

남양유업 매각 번복과 위험요인
법정으로 간 눈물의 매각 약속
주가 떨어지고 불매 확산 조짐
부메랑 맞은 남양유업 임직원
근속연수 11년 임직원의 애먼 눈물.

회장은 눈물 흘리며 회사를 팔겠다고 했다. 경영권을 세습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코로나19를 마케팅 수단으로 삼았다 뭇매를 맞았으니 그럴 법도 했다. 가뜩이나 평판이 나쁜 기업이었다. 회장의 발표에 주가는 껑충 뛰었다. 이 기업을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회장은 여전히 회사에 있고 눈물의 약속은 지켜질지 알 수 없다. 문제는 그 회사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는 점이다. 남양유업의 이야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매각을 번복한 남양유업의 위험요인을 짚어봤다.

지난 5월 4일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은 ‘눈물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남양유업이 “불가리스가 코로나19에 도움이 된다”는 얼토당토않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가 후폭풍을 맞은 직후였다. 그는 ‘모든 걸’ 내려놓고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

앞서 남양유업이 논란을 일으켰던 문제들도 언급했다. “2013년 밀어내기 사태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외조카 황하나 사건, 지난해 발생한 (매일유업) 비방글 사태 등 논란이 생겼을 때 회장으로서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서 사과드리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데 많이 부족했다.”

몇몇 사람들은 ‘진정성’에 물음표를 달았지만, 시장은 그의 ‘눈물’을 믿었다. ‘눈물의 기자회견’ 다음날 남양유업의 주가는 38만7500원으로 전일(36만2500원) 대비 6.9% 상승했다. 하지만 그 눈물이 ‘약속 철회’란 부메랑으로 날아올지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했다.

#징후❶ = 기자회견을 연 지 20여일 후인 5월 26일. 회삿돈 유용 의혹으로 해임됐던 장남 홍진석 상무가 복직했다(전략기획 담당). 남양유업이 “오너 일가 지분 전체(53.08%)를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매각하겠다”고 발표하기 하루 전날이었다. 같은 날 차남인 홍범석 외식사업본부장도 ‘미등기 임원’으로 승진했다.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던 홍 회장의 발언과는 정반대 조치였다.

#징후❷ = 이뿐만이 아니었다. 남양유업 측은 한앤컴퍼니를 견제할 시스템까지 구축해뒀다. 대표이사 직속이던 기획마케팅본부ㆍ영업본부ㆍ전산보안팀을 총괄하는 ‘수석본부장 직제’를 신설하고 그 자리에 ‘남양맨’ 김승언씨를 앉혔다. 김씨는 남양유업 기획마케팅본부장ㆍ생산전략본부장, 음료생산 계열사 건강한사람들 대표 등을 거친 인물이다.

7월 30일엔 경영권 이전과 주식 매각 절차 종결을 위해 개최할 예정이던 임시주총까지 9월 14일로 미뤄버렸다. 시장 안팎에서 홍 회장이 ‘딴마음’을 품고 있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흘러나온 건 이때부터다.

#사실❶ = 재계 밑바닥에 흐르는 ‘풍문’이 풍문에 그치는 일은 별로 없다. 사실에 가깝거나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도 그랬다. ‘홍 회장이 딴마음을 품고 있다’는 소문은 조금씩 사실로 드러났다.

그 속내가 드러난 일단은 남양유업이 8월 17일 발표한 ‘반기보고서’였다. 남양유업 측은 이 보고서에 홍 회장의 직함을 ‘회장’이라고 기재했다. 그가 상반기 8억800만원의 보수도 챙긴 것도 드러났다. “회장직을 관두겠다”던 그가 직함을 유지했음은 물론 보수까지 받은 셈이었다.

이 사실은 또 다른 풍문을 낳았다. 홍 회장이 ‘딴마음’을 품은 이유를 설명해 놓은 소문들이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분 매각 조건에 우선매수권, 콜옵션 등이 포함돼 있다” “홍 회장이 헐값에 매각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몸값을 높이기 위해 밀당을 하고 있다”…

#사실❷ = 어쨌거나 소문이 완전한 사실로 드러난 건 지난 1일의 일이다. 남양유업과 한앤컴퍼니의 주식매매계약서상 거래종결일(8월 31일)을 하루 넘긴 날이었다. 홍 회장의 법률대리인인 LKB앤파트너스는 “한앤컴퍼니에 주식매매계약 해제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계약 해제 이유는 ‘약정 위반’이었다. 한앤컴퍼니 측이 사전 합의 사항 이행을 거부하고, 비밀유지의무 사항 등을 위배했다는 거였다.

앞서 한앤컴퍼니 측은 하루 전 입장문을 발표하고 “소송을 통해 시비를 가리겠다”고 밝힌 상태였다. 결국 홍 회장의 ‘눈물의 기자회견’에서 시작한 매각 플랜이 ‘법적 공방’으로 비화한 셈이다.

홍 회장이 왜 마음을 바꿨는지, 한앤컴퍼니와 협상에서 어떤 갈등요소가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홍 회장이 눈물로 호소했던 말과 약속을 뒤집고 또다른 ‘비즈니스(매각작업)’를 꾀하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 비즈니스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홍 회장 입장에선 ‘조건 없는 매각’보단 얻을 게 많은 게임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작 문제는 홍 회장 일가가 이미지를 훼손해 놓은 ‘남양유업’이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1일 남양유업을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 예고했다.[※참고: 불성실공시법인이란 투자 판단에 필요한 기업 정보를 뒤늦게 공시하거나 이미 공시한 내용을 번복해 투자자에게 혼란을 주는 경우 한국거래소가 제재를 가하기 위해 지정(유가증권시장 공시규정에 의거)하는 법인을 의미한다.]

또다시 신뢰를 저버린 남양유업을 바라보는 시장의 반응도 탐탁지 않다. 지분 매각 발표 이후 한때 76만원(7월 1일)까지 치솟았던 남양유업의 주가는 지난 2일 50만4000원으로 떨어졌다. 소비자의 불매운동도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밀어내기 사태 이후 지속돼 온 남양유업 불매운동에 홍 회장 스스로 불을 지핀 셈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땅에 떨어진 직원들의 사기다. 남양유업에 생계가 달린 직원(임원 제외)은 2000명을 훌쩍 넘는다. 더구나 이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11년이다. 생산직 근무 직원(남성 기준)의 근속연수는 15년에 달한다. 누군가에겐 ‘매각의 대상’이거나 ‘불매의 대상’이지만 이들에게 남양유업은 미우나 고우나 10년 넘게 다닌 귀한 직장인 셈이다.

어쨌거나 홍 회장은 ‘남양유업 경영 정상화를 위한 재매각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남양유업을 위해 모든 걸 내려놓겠다”던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는 비즈니스를 꾀했을지 모르지만 정작 비즈니스에서 가장 나쁜 불신만 만들어냈고, 그 복판엔 애먼 남양유업 임직원만 남았다. 홍 회장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눈물의 기자회견을 후회하고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눈물의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을까.

김사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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