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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보장성 vs. 재정안정 프레임은 틀렸다... 국민연금 논쟁 제대로 보는 법

20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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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나는 국민연금 개혁에 관한 논쟁이 잘못된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토론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느낌이다. 이 논쟁에서 국민연금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장성강화론'이라 부른다. 이들과 논쟁 과정에서 연금으로 줄 돈부터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은 '재정안정론'이라 불린다.

나는 이것이 엉뚱한 이름 붙이기라 믿는다. 어떤 사안에 대해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에 따라 전달하는 메시지도 달라진다. 내가 보기에 이 논쟁의 진의를 제대로 이해하면 전자는 '사회공동체파', 후자는 '각자도생파'로 불러야 마땅하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국민연금 논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각자도생파가 '당연한 것'으로 믿는 전제부터 따져봐야 한다.

경과

국민연금법 제4조는 (2003년부터) 매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를 구성(위원장 1인, 민간위원 12인, 정부위원 2인, 간사 1인 등으로 구성)하여 미래 70년 동안의 국민연금 재정 전망을 추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추산 결과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지급액, 지원 방안 등 전반적인 제도의 변경(안)을 국회에 제안한다.

재정계산위원회는 작년부터 꾸려져 활동해 왔고, 지난 9월 1일 공청회까지 열었다. 하지만 국회에 제출할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이 순조롭지 못한 듯하다. '보장성강화론자'로 불린 두 위원이 최종 보고서 완료 직전에 재정계산위원회를 탈퇴하고,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런 파행(?)의 원인은 두 입장 사이의 의견 차이와 그 의견 차이를 다루는 방식에 있었던 듯하다.
 

▲ 지난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에게 인사하는 김용하 재정계산위원장 너머로 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연금행동) 관계자들이 규탄 피켓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의견 차이

양자 사이의 차이는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어서, 일반인의 의견 개입은 쉽지 않아 보인다. 재정계산위원회 위원 중 한 명인 오건호 위원(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재정안정론자의 대표를 자처하며, 지난 1일 <프레시안>에 소득대체율(연금 가입 기간 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의 비율) 인상론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관련 기사 : 언제까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에 갇혀 있을 건가?)

오건호 위원의 주장에서 내 눈에 띄는 대목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이것저것'(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의 역할 강화, 국민연금 실수령액 증가를 위한 정부의 지원 등) 다양한 방법을 고려하자는 제안이다. 그러면서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를 주장하는 측은 소득대체율 인상에만 '집착'한다고 비난한다.

오건호 위원의 두 번째 핵심 주장은 일반세금이 투입되는 '다양한 재정방안'이 "필자(오건호 위원)의 판단으로는 거의가 현실성도 약하고 추상적"이라는 비판이다. 다양한 재정방안이란 것이 대부분 일반세금인데 오 위원은 "국고는 연금 취약층 지원에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저것'을 장황하게 설명한 것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논평이다. 하지만 이하에서 보듯 나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논쟁점이라 믿는다.

오건호 위원의 주장에 대해 남찬섭 위원(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지난 5일 같은 지면에 즉시 반론했다.(관련 기사 :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 글에도 수많은 기술적 설명이 있어 난해하지만, 내 눈에 띈 요점은 대략 세 가지이다.

첫째, 보장성강화론자들은 오건호 위원이 제안하는 '이것저것'을 반대한 적이 없다. 둘째, 오건호 위원은 보장성강화론자들이 "왜 한국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낮은지를 객관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는데, 남찬섭 위원은 본인이 직접 참여하여 연구하고 설명한 최근의 보고서와 학술논문을 3편이나 제시했다.

남찬섭 위원의 세 번째 반론은 왜 국민연금이 필요하고, 기초연금이나 퇴직연금 등으로 대체할 수 없는지를 설명한다. 요약하면 국민연금은 권리성이 강한 공적연금이고, 기초연금은 공공부조이기 때문이다. 또한 퇴직연금을 연금으로 활용하길 기대하기 어렵다. 공공부조의 규모는 조세 저항 때문에 규모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국민이 권리로 인식하는 정도가 약하니 불안정하다는 말이다.

사고실험을 위해 극단적으로 가정해보자. 국민연금을 폐지하면 기초연금이 그 역할을 대체할 수 있나? 다른 말로 기초연금으로 월 100만 원 이상 지급할 수 있나? 거의 불가능하다. 기초연금 재원은 일반과세로 충당된다. 국민연금 가입 의무가 폐지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만큼의 기초연금을 위한 증세는 정치적으로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퇴직연금은 국민연금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나?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퇴직연금은 전적으로 기업이 부담한다. 재계는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조차 반대해 왔고 정치권도 수용해 왔다. 기업에만 노후소득보장 책임을 전가할 수 없기에 퇴직연금의 역할은 처음부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이는 바람직하지도 않다. 오건호 위원의 걱정처럼 퇴직연금이야말로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이후 9월 6일 오건호 위원은 <경향신문>에 또 하나의 칼럼을 게재했다. 남찬섭 위원의 반론에는 아무런 재반론도 없이 이전 <프레시안> 기고문의 주장을 요약하여 반복했다. 다만, 여기서는 '반쪽짜리' 보고서 논란을 "입장 대립을 넘어선 과도한 연금정치, 국민연금 명목 소득대체율에 갇힌 협소한 연금정치"로 규정했다. 오건호 위원이 주장하는 '이것저것'에 더해 소득대체율도 높이자는 주장을 왜 시야가 좁고 편협하다고 비난하는지 다시 한번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현황 

최대한 간략하고 쉽게 풀어 설명하려고 애썼지만, 여전히 어지럽다. 우선 상황을 정리하자. 이번 재정계산위원회가 제시한 추정치부터 확인하자. 이에 따르면, 2055년 경이 되면 국민연금 기금이 바닥난다.

기금이 고갈되고 당시의 가입자(미래 세대로 부르자)가 내는 국민연금 보험료로만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가정하면, 미래 세대는 무려 월급의 26.1%(직장 가입자는 본인 월급의 13%, 회사가 13% 분담)를 내야한다. 이것을 부과방식비용율이라 부른다. 이는 2080년 경까지 35%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한다.

또 하나의 비관적인 전망치는 소위 '제도부양비'이다. 당시 연금에 가입해서 보험료를 납부하는 인구 수 대비 국민연금을 받는 노인인구의 비율을 말한다. 현재 이 비율은 약 24(%)이다. 국민연금에 보험료를 내는 인구가 수급자 노인인구보다 약 4배 많다는 의미이다(100%이면 두 인구수가 같다는 의미).

그러나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이 비율이 점점 높아져 2055년 경이 되면 약 110에 도달하여, 보험료를 내는 사람보다 받는 노인인구가 많아진다. 재정계산위원회는 이 비율이 2080년까지 약 143%까지 높아질 것으로 추산했다.

여기까지가 언론이 대서특필한 내용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된다는 2055년 경 우리나라 노인인구(이하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42%를 차지하고, 2080년 47%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기간 노인인구 중 약 86~90%가 국민연금을 수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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