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 사주’ 의혹이 정치공작? 무지·무논리·몰염치의 극치.
2021.09
23
뉴스관리팀장
12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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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을 야당에 전달해 고발을 사주했다는 의혹은 실로 심각한 사안입니다. 검찰총장 부인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 등을 보도한 언론인까지 고발 사주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검찰의 정치개입, 검찰 조직 사유화, 언론에 대한 보복 수사 등이 한 데 엉킨 ‘헌정 문란’, ‘검찰 농단’ 의혹입니다.
지난 2일 언론의 첫 보도가 나오자 김오수 검찰총장의 지시로 대검찰청 감찰부가 즉각 진상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만큼 의혹이 중차대하고 개연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지난 10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 등을 피의자로 입건하고 본격 수사에 나섰습니다. 서울중앙지검도 15일 관련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런데 사안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국민의힘 쪽 대응은 사건 초기부터 너무나 억지스럽고 천연덕스러워 오히려 코미디 같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시종일관 ‘정치공작’이라고 강변하는데, 분명한 근거도 명확한 논리도 없이 정치공작이라는 단어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들도 무비판적으로 이런 주장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할 만한 실체적·논리적 근거가 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정치공작이라는 안개 같은 용어 뒤로 숨는 것은 진실을 밝히는 데도, 올바른 여론 형성에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사건 흐름과 함께 하나씩 따져보겠습니다.
먼저 ‘공작’의 사전적 의미부터 보겠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공작은 ‘어떤 목적을 위하여 미리 일을 꾸밈’이라고 풀이돼 있습니다. 고발 사주 의혹이 여권의 정치공작이라고 하면 사전적 의미상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시나리오는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검찰에서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으로 고발장이 전달되도록 여권이 일을 꾸몄다는 것입니다. 여권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눈과 귀’라고 불리는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정책관과 김웅 국민의힘 국회의원 후보를 끌어들여 공작을 했다는 말이 되는데, 이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지 않을까요. 이런 의미로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한다면 일고의 가치도 없을 것입니다.
사건 초기에 나온 또 다른 황당한 대응은 “고발을 사주했다면 왜 고발이 안 됐냐”라며 고발 사주가 없었다고 주장한 윤 전 총장의 3일 발언입니다. 비유하자면, 뇌물을 줬어도 청탁한 일이 성사되지 않았으면 뇌물을 준 사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입니다. 뇌물을 준 것만으로 범죄가 성립한다는 건 상식입니다. 한 나라의 검찰총장까지 지낸 사람의 논리력이 이 정도면 국민들이 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게다가 국민의힘으로 전달된 고발장 중 일부(최강욱 당시 열린민주당 후보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고발장)는 이후 실제로 국민의힘에 의해 고발이 이뤄졌습니다. 더 이상 언급할 가치도 없는 논리입니다.
윤석열 캠프 종합상황실 총괄실장인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은 같은 날 “윤 전 총장이 진짜 야당 고발이 필요하다고 했다면 그 당시 미래통합당 법률지원 책임자이자 가까운 사이인 (검찰 출신) 정점식 의원에게 전달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나름 정치공작설의 근거라고 제시한 논리인데요, 이 역시 고발장을 김웅 의원에게도 전달하고 동시에 정점식 의원에게도 전달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논리적 허점은 여전합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김웅 의원에게 전달된 것과 판박이인 고발장이 다른 경로로 정점식 의원에게 전해졌고 이것이 실제 고발에 활용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정점식 의원에게 고발장이 전달된 경로는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윤석열 전 총장이 다음으로 들고나온 것이 ‘괴문서’론입니다. 윤 전 총장은 8일 기자회견에서 “출처와 작성자 없는 괴문서로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도무지 검사가 작성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질 않는다”고 했습니다. 고발장과 이를 손준성 수사정보정책관이 김웅 의원에게 전달한 텔레그램 메시지 자체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정치공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윤 전 총장은 “4월3일에 일어난 일이 4월3일자 고발장에 들어가 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공수처의 수사와 검찰의 진상조사를 통해 의혹을 뒷받침하는 사실관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공수처는 손준성 전 수사정보정책관을 고발장 전달자로 잠정 결론을 내렸습니다. 김웅 의원이 이 사건 제보자인 조성은 전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한 고발장 등에 ‘손준성 보냄’이란 표시가 있는데 이 ‘손준성’의 텔레그램 계정과 손준성 검사(전 수사정보정책관)의 텔레그램 계정이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난 바 있습니다. 공수처는 고발장을 직접 작성한 게 누구인지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고, 대검 감찰부는 더 나아가 고발장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검사를 특정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윤 전 총장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들이 실제 일어난 셈입니다.
윤 전 총장은 12일 청년 토크 콘서트 뒤 기자들과 만나 이런 말도 했습니다. “공작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고발 사주를) 내가 안 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누가 손해를 보고 누가 이득을 보는지 생각해야 한다.” 이 또한 무논리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윤 전 총장이 개입했는지 여부는 조사가 더 진행돼야 알 수 있을 테지만,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그것이 고발 사주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근거는 될 수 없습니다. 또 윤 전 총장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런 중차대한 사안은 공론화하는 게 당연합니다. 게다가 윤 전 총장이 개입 여부를 떠나 최소한 지휘 책임은 져야 하는 사안입니다. 법질서를 수호해야 하는 국가기관에서, 그것도 검찰총장의 핵심 보좌 부서에서 이런 범법행위가 벌어졌다면 당시 총장의 지휘 책임은 가볍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이므로 이를 공론화하는 것은 공작이라고 규정하는 건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고입니다. 의혹의 사실관계에 기반해 판단하지 않고 누구에게 유리한지만 따져 자신에게 불리하면 공작이라고 규정하는 태도 역시 비상식적입니다. 이런 말을 저렇게 당당하게 한다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쯤 되면 윤 전 총장이나 국민의힘은 정치공작 프레임을 더 이상 입에 담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정치공작 프레임으로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 것을 반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고발 사주 의혹이 점점 사실로 드러나자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급기야 “(의혹이) 맞으면 맞지 무슨 상관이 있냐. 하등 문제될 게 없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검찰이 전달한 고발장과 판박이인 고발장으로 국민의힘이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를 실제로 고발해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났는데요, 김기현 원내대표는 이를 두고 김웅 의원에게 표창장을 줘야 한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검찰이 선거에 개입하고 총장 측근·가족 관련 의혹을 제기한 언론인을 고발해달라고 야당에 사주해도 문제가 없다니,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범죄 행위를 노골적으로 감싸는 몰염치이자, 국가기관인 검찰과 공당이 넘지 말아야 할 선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의 극치입니다.
지난 8일 열린 최강욱 대표 항소심 재판에서 법원은 “고발 사주 사건의 사실관계가 확인된 다음에 판단을 내리겠다”며 공판을 두 달 뒤로 미뤘습니다. 고발·기소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재판에서도 이를 고려하겠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그만큼 이번 의혹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국민의힘과 윤 전 총장은 이제 사안의 본질인 고발 사주에서 비껴나, 제보자인 조성은씨와 박지원 국정원장의 만남에 정치공작 프레임을 씌우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박지원 게이트’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이 이번 의혹의 몸통인 지난해 4월 고발 사주 과정에 박지원 원장이 끼어들 여지는 없습니다. 또 언론에 제보된 내용이 국정원의 사찰을 통해 얻은 정보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공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번 제보는 제보자 조성은씨가 직접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박지원 원장이 제보자와 만난 것은 이미 제보가 이뤄진 7월21일 이후인 8월11일이었습니다. 보도는 9월2일 나왔습니다. 만약 박지원 원장이 이 사건에 개입한 게 사실이라면, 제보자에게 제보에 대한 사후적 조언을 하는 정도였을 겁니다. 조성은씨가 언론 인터뷰에서 “(보도가 이뤄진) 9월2일은 우리 원장님이나 제가 원한 날짜가 아니다”라고 발언한 게 그런 의문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박지원 원장과 조성은씨 모두 당시 만남에서 고발 사주 사건 관련 대화는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물론 국정원장이 정치인과 관련된 의혹 보도에 훈수를 뒀다면 그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위입니다. 이 또한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고발 사주 의혹과 별개로 다뤄야 할 사안입니다. 고발 사주 의혹의 몸통인 사실관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고발 사주 의혹을 가리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전 총장과 국민의힘은 어떻게든 두 사안을 엮어보려고 박지원 원장과 조성은씨가 만나는 자리에 특정 대선 캠프 소속 인사가 동석했다는 둥, 조성은씨가 국정원 비밀요원이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는 둥 ‘아무말 대잔치’식의 공작설을 내놓고 있습니
거듭 강조하지만, 고발 사주 의혹은 검찰의 정치 개입, 검찰총장의 조직 사유화라는 ‘헌정 문란’, ‘검찰 농단’ 사안입니다. 법치와 공정을 강조해왔고 헌법을 수호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전직 검찰총장이라면 이런 의혹이 제기됐을 때 진중한 자세로 대응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최소한 이것이 얼마나 엄중한 사안인지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 뒤 본인과 무관함을 밝히든지 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윤 전 총장 말대로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면, 지휘 체계를 무시한 채 이런 일을 저지른 부하를 누구보다 앞장서 질책하고 단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러나 실제 대응 과정은 최소한의 논리와 상식마저 내던지고 정치공작이라는 한 마디에만 매달리는 형국입니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태도는 고발 사주라는 범죄 행위를 비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기된 의혹에 대응하는 태도에서도 정치인의 자질이 드러납니다. 진지하게 진상을 규명해야 할 중대 사안을 무조건 정치공작 프레임으로 몰아가는 막무가내식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만약 국정을 이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일방통행, 강압, 구태 정치가 떠오릅니다. 검찰의 고발 사주와 같은 음험한 공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이야말로 ‘공작 정치’의 위험성을 우려하게 합니다. 윤석열 전 총장이나 국민의힘이 집권을 원하고 이를 위해 국민의 지지를 얻고자 한다면 이런 태도부터 고쳐야 한다고 봅니다.
김경태 기자.
지난 2일 언론의 첫 보도가 나오자 김오수 검찰총장의 지시로 대검찰청 감찰부가 즉각 진상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만큼 의혹이 중차대하고 개연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지난 10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 등을 피의자로 입건하고 본격 수사에 나섰습니다. 서울중앙지검도 15일 관련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런데 사안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국민의힘 쪽 대응은 사건 초기부터 너무나 억지스럽고 천연덕스러워 오히려 코미디 같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시종일관 ‘정치공작’이라고 강변하는데, 분명한 근거도 명확한 논리도 없이 정치공작이라는 단어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들도 무비판적으로 이런 주장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할 만한 실체적·논리적 근거가 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정치공작이라는 안개 같은 용어 뒤로 숨는 것은 진실을 밝히는 데도, 올바른 여론 형성에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사건 흐름과 함께 하나씩 따져보겠습니다.
먼저 ‘공작’의 사전적 의미부터 보겠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공작은 ‘어떤 목적을 위하여 미리 일을 꾸밈’이라고 풀이돼 있습니다. 고발 사주 의혹이 여권의 정치공작이라고 하면 사전적 의미상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시나리오는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검찰에서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으로 고발장이 전달되도록 여권이 일을 꾸몄다는 것입니다. 여권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눈과 귀’라고 불리는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정책관과 김웅 국민의힘 국회의원 후보를 끌어들여 공작을 했다는 말이 되는데, 이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지 않을까요. 이런 의미로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한다면 일고의 가치도 없을 것입니다.
사건 초기에 나온 또 다른 황당한 대응은 “고발을 사주했다면 왜 고발이 안 됐냐”라며 고발 사주가 없었다고 주장한 윤 전 총장의 3일 발언입니다. 비유하자면, 뇌물을 줬어도 청탁한 일이 성사되지 않았으면 뇌물을 준 사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입니다. 뇌물을 준 것만으로 범죄가 성립한다는 건 상식입니다. 한 나라의 검찰총장까지 지낸 사람의 논리력이 이 정도면 국민들이 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게다가 국민의힘으로 전달된 고발장 중 일부(최강욱 당시 열린민주당 후보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고발장)는 이후 실제로 국민의힘에 의해 고발이 이뤄졌습니다. 더 이상 언급할 가치도 없는 논리입니다.
윤석열 캠프 종합상황실 총괄실장인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은 같은 날 “윤 전 총장이 진짜 야당 고발이 필요하다고 했다면 그 당시 미래통합당 법률지원 책임자이자 가까운 사이인 (검찰 출신) 정점식 의원에게 전달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나름 정치공작설의 근거라고 제시한 논리인데요, 이 역시 고발장을 김웅 의원에게도 전달하고 동시에 정점식 의원에게도 전달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논리적 허점은 여전합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김웅 의원에게 전달된 것과 판박이인 고발장이 다른 경로로 정점식 의원에게 전해졌고 이것이 실제 고발에 활용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정점식 의원에게 고발장이 전달된 경로는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윤석열 전 총장이 다음으로 들고나온 것이 ‘괴문서’론입니다. 윤 전 총장은 8일 기자회견에서 “출처와 작성자 없는 괴문서로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도무지 검사가 작성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질 않는다”고 했습니다. 고발장과 이를 손준성 수사정보정책관이 김웅 의원에게 전달한 텔레그램 메시지 자체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정치공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윤 전 총장은 “4월3일에 일어난 일이 4월3일자 고발장에 들어가 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공수처의 수사와 검찰의 진상조사를 통해 의혹을 뒷받침하는 사실관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공수처는 손준성 전 수사정보정책관을 고발장 전달자로 잠정 결론을 내렸습니다. 김웅 의원이 이 사건 제보자인 조성은 전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한 고발장 등에 ‘손준성 보냄’이란 표시가 있는데 이 ‘손준성’의 텔레그램 계정과 손준성 검사(전 수사정보정책관)의 텔레그램 계정이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난 바 있습니다. 공수처는 고발장을 직접 작성한 게 누구인지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고, 대검 감찰부는 더 나아가 고발장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검사를 특정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윤 전 총장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들이 실제 일어난 셈입니다.
윤 전 총장은 12일 청년 토크 콘서트 뒤 기자들과 만나 이런 말도 했습니다. “공작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고발 사주를) 내가 안 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누가 손해를 보고 누가 이득을 보는지 생각해야 한다.” 이 또한 무논리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윤 전 총장이 개입했는지 여부는 조사가 더 진행돼야 알 수 있을 테지만,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그것이 고발 사주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근거는 될 수 없습니다. 또 윤 전 총장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런 중차대한 사안은 공론화하는 게 당연합니다. 게다가 윤 전 총장이 개입 여부를 떠나 최소한 지휘 책임은 져야 하는 사안입니다. 법질서를 수호해야 하는 국가기관에서, 그것도 검찰총장의 핵심 보좌 부서에서 이런 범법행위가 벌어졌다면 당시 총장의 지휘 책임은 가볍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이므로 이를 공론화하는 것은 공작이라고 규정하는 건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고입니다. 의혹의 사실관계에 기반해 판단하지 않고 누구에게 유리한지만 따져 자신에게 불리하면 공작이라고 규정하는 태도 역시 비상식적입니다. 이런 말을 저렇게 당당하게 한다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쯤 되면 윤 전 총장이나 국민의힘은 정치공작 프레임을 더 이상 입에 담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정치공작 프레임으로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 것을 반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고발 사주 의혹이 점점 사실로 드러나자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급기야 “(의혹이) 맞으면 맞지 무슨 상관이 있냐. 하등 문제될 게 없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검찰이 전달한 고발장과 판박이인 고발장으로 국민의힘이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를 실제로 고발해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났는데요, 김기현 원내대표는 이를 두고 김웅 의원에게 표창장을 줘야 한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검찰이 선거에 개입하고 총장 측근·가족 관련 의혹을 제기한 언론인을 고발해달라고 야당에 사주해도 문제가 없다니,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범죄 행위를 노골적으로 감싸는 몰염치이자, 국가기관인 검찰과 공당이 넘지 말아야 할 선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의 극치입니다.
지난 8일 열린 최강욱 대표 항소심 재판에서 법원은 “고발 사주 사건의 사실관계가 확인된 다음에 판단을 내리겠다”며 공판을 두 달 뒤로 미뤘습니다. 고발·기소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재판에서도 이를 고려하겠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그만큼 이번 의혹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국민의힘과 윤 전 총장은 이제 사안의 본질인 고발 사주에서 비껴나, 제보자인 조성은씨와 박지원 국정원장의 만남에 정치공작 프레임을 씌우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박지원 게이트’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이 이번 의혹의 몸통인 지난해 4월 고발 사주 과정에 박지원 원장이 끼어들 여지는 없습니다. 또 언론에 제보된 내용이 국정원의 사찰을 통해 얻은 정보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공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번 제보는 제보자 조성은씨가 직접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박지원 원장이 제보자와 만난 것은 이미 제보가 이뤄진 7월21일 이후인 8월11일이었습니다. 보도는 9월2일 나왔습니다. 만약 박지원 원장이 이 사건에 개입한 게 사실이라면, 제보자에게 제보에 대한 사후적 조언을 하는 정도였을 겁니다. 조성은씨가 언론 인터뷰에서 “(보도가 이뤄진) 9월2일은 우리 원장님이나 제가 원한 날짜가 아니다”라고 발언한 게 그런 의문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박지원 원장과 조성은씨 모두 당시 만남에서 고발 사주 사건 관련 대화는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물론 국정원장이 정치인과 관련된 의혹 보도에 훈수를 뒀다면 그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위입니다. 이 또한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고발 사주 의혹과 별개로 다뤄야 할 사안입니다. 고발 사주 의혹의 몸통인 사실관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고발 사주 의혹을 가리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전 총장과 국민의힘은 어떻게든 두 사안을 엮어보려고 박지원 원장과 조성은씨가 만나는 자리에 특정 대선 캠프 소속 인사가 동석했다는 둥, 조성은씨가 국정원 비밀요원이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는 둥 ‘아무말 대잔치’식의 공작설을 내놓고 있습니
거듭 강조하지만, 고발 사주 의혹은 검찰의 정치 개입, 검찰총장의 조직 사유화라는 ‘헌정 문란’, ‘검찰 농단’ 사안입니다. 법치와 공정을 강조해왔고 헌법을 수호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전직 검찰총장이라면 이런 의혹이 제기됐을 때 진중한 자세로 대응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최소한 이것이 얼마나 엄중한 사안인지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 뒤 본인과 무관함을 밝히든지 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윤 전 총장 말대로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면, 지휘 체계를 무시한 채 이런 일을 저지른 부하를 누구보다 앞장서 질책하고 단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러나 실제 대응 과정은 최소한의 논리와 상식마저 내던지고 정치공작이라는 한 마디에만 매달리는 형국입니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태도는 고발 사주라는 범죄 행위를 비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기된 의혹에 대응하는 태도에서도 정치인의 자질이 드러납니다. 진지하게 진상을 규명해야 할 중대 사안을 무조건 정치공작 프레임으로 몰아가는 막무가내식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만약 국정을 이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일방통행, 강압, 구태 정치가 떠오릅니다. 검찰의 고발 사주와 같은 음험한 공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이야말로 ‘공작 정치’의 위험성을 우려하게 합니다. 윤석열 전 총장이나 국민의힘이 집권을 원하고 이를 위해 국민의 지지를 얻고자 한다면 이런 태도부터 고쳐야 한다고 봅니다.
김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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