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도 못 말리는 윤석열의 ‘황당 발언’ 3종 세트.
2021.07
25
뉴스관리팀장
11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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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번주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무리수 발언’들이 쏟아져 나와 큰 파문이 일었습니다.
“코로나가 대구에서 시작됐는데 잡혔다. 우리나라 사람이 그런 얘기 많이 한다. ‘초기 확산이 대구 아니고 다른 지역이었다면 질서있는 처치나 진료가 안 되고 아마 민란부터 일어났을 거’라고 할 정도로.”(대구 동산병원 의료진과 대화)
“(대구)지역에서 배출한 대통령에 대한 수사 소추를 했던 것에 대해 섭섭하거나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마음속으로 송구한 부분도 없지 않다.”(<대구KBS> 인터뷰)
“스타트업 청년들을 만났더니, 주 52시간 제도 시행에 예외조항을 둬서 근로자가 조건을 합의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토로하더라.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매일경제> 인터뷰)
“경영진을 직접 사법처리하는 문제에 대해선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을 형사처벌하기보다는 법인에 고액 벌금을 부과하는 등 법인의 형사 책임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형사법이 개정돼야 한다.”(<매일경제> 인터뷰)
‘정치인 윤석열’의 자질과 역량을 드러내는 발언들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세가지 중대한 흠결을 보게 됩니다.
먼저, ‘주 120시간 노동’ 발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나라를 이끌 지도자로 준비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주 52시간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해마다 300명 가까운 노동자가 과로로 숨지고, 연간 노동시간이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선두권인 우리나라에서 주 52시간제는 누군가에게 삶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윤 전 총장은 게임업체를 예로 들었는데요, 그리 오래지 않은 2016년 게임업체 20대 노동자가 과로로 인한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사건이 있습니다. 발병 4주 전에는 주 78시간, 발병 7주 전에는 주 89시간을 일하는 등 불규칙하고 과도한 초과근무를 한 사실에 근거해 업무상 질병, 즉 산업재해로 인정됐습니다. ‘크런치 모드’라고 불리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집중 장시간 노동은 여러차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던 악습입니다.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 문제는 지금 당장의 사회적 이슈입니다.
이 같은 우리 사회의 과로 노동 실태, 노동현장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라도 있다면 ‘120시간’이라는 허황된 수치는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법정 노동시간을 18년 만에 주 68시간제에서 주 52시간제로 낮춘 배경에는 많은 국민이 공유하는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가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국가 경제를 위해, 회사를 위해, 가족 부양을 위해 밤낮없이 기계처럼 일하라고 하는 산업화 시대의 ‘국민 동원식 노동관’은 이제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윤 전 총장의 인식은 그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퇴행적 노동관입니다.
논란이 커지자 윤 전 총장은 이런 해명을 내놨습니다.
“주 120시간을 근무하는 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이야기로서 제게 그 말을 전달한 분들도 ‘주 52시간제를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데 따른 현장의 어려움’을 강조한 것이지 실제로 120시간씩 과로하자는 취지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이야기’라면서 언론 인터뷰에서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했다니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인터뷰 영상을 보면, 윤 전 총장은 일일이 곱셈까지 해가며 120시간 이야기를 합니다. 또 ‘주 52시간제를 획일적으로 적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미 정부는 유연근로제, 특별근로제, 선택근로제 등 다양한 예외 조처를 마련해 시행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 대해 윤 전 총장이 제대로 숙고하지 않은 채 인상비평 수준의 발언을 가볍게 던지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준비 부족의 한 단면을 드러낸 것입니다.
두 번째, ‘자기 부정’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기소에 대해 윤 전 총장은 이번 대구 방문에서 “검사로서 형사법을 기준으로 사건을 처리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서 일했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은 검찰이 검사 31명 등 150여명으로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검찰의 명운을 걸고 했던 수사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마지못해 수사를 했다는 식의 궁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송구한 부분도 없지 않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윤 전 총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수사하다 좌천되는 등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당시 국정감사장에서 수사 외압에 대해 폭로하면서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도 남겼죠. 그렇게 당당했던 ‘검사 윤석열’이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 자신의 검사 인생에 족적으로 남을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해 비굴한 해명을 하고 있는 모습은 보기에 딱합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조차 “‘님아 그 (탄핵의) 강에 빠지지 마오’ 제발 그랬으면 하는 생각이었는데 다시 그 강으로 들어가는 취지의 발언이 나왔다”며 “윤 전 총장이 (박 전 대통령 수사 등에 대해) 조금 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충고할 정도입니다.
윤 전 총장이 기업 범죄와 관련해 ‘경영진 형사처벌 면제’ 주장을 한 것도 자기 부정입니다. 윤 전 총장은 이른바 ‘특수통’ 검사였고, 특수부 검사들의 주된 임무가 기업·경제범죄를 처단하는 것입니다. 그가 검찰총장 취임 일성으로 내세운 말도 이랬습니다. “시장의 룰이 깨지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진다. 룰을 위반하는 반칙 행위는 묵과할 수 없다.” 대기업 등의 시장질서 교란·파괴 행위와 갑질 등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 윤 전 총장이 이번 <매일경제> 인터뷰에서는 ‘기업 범죄’에 대해 경영진을 처벌하지 말고 법인에만 벌금을 부과하자고 했습니다. 경영진에 대해서는 나중에 주주들이 민사소송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으로 책임을 묻자고 합니다. 형사처벌로도 근절되지 않는 기업 범죄를 이런 식으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대기업 총수나 경영진이 벌금, 배상금 따위를 두려워하겠습니까. 또 우리가 보아온 재벌 총수의 범법행위 중 상당수는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사익을 챙기는 배임·횡령입니다. 피해자인 법인을 처벌하자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한해 800~900명에 이르는 산업재해 사망 사고에 대한 대처로 경영진의 책임을 강화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든 시점에서, 경영진 면책론을 들고나온 것은 국민의 안전을 경시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윤 전 총장이 이번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시카고학파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철학에 공감한다’고 했는데 총장 취임 당시 ‘취임사 설명자료’에서도 “시카고학파인 밀턴 프리드먼의 사상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는 점입니다. 그때와 지금, 같은 학자의 사상을 언급하며 정반대의 메시지를 내놓은 셈입니다. 많이 헛갈립니다.
이렇게 자신의 과거를 전면 부정하면서 국민들에게 무엇을 보고 지지해달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세 번째는 ‘민란’ 발언입니다. 국민을 대하는 자세가 너무나 경박합니다.
“(코로나19) 초기 확산이 대구 아니고 다른 지역이었다면 질서있는 처치나 진료가 안 되고 민란부터 일어났을 것”이라는 윤 전 총장의 발언은 충격 그 자체입니다. 코로나19에 대처한 대구의 시민의식을 평가하고 1차 대유행 당시 대구가 겪은 고통을 위로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역을 가르고 지역 정서를 자극해 표를 얻으려는 태도는 정치적 적폐인 지역주의입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번 발언이 단순한 지역주의를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윤 전 총장의 ‘국민관’을 보여줍니다. 국민을 코로나19 확산에 질서를 잃고 민란을 일으킬 존재로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국민은 놀라운 인내와 희생으로 코로나19 팬데믹과 싸우고 있습니다. 소중한 일상을 잃어버리고 직접적인 경제적 타격을 받으면서도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묵묵히 방역에 동참하고 있는 국민들의 모습은 눈물겨울 정도입니다. 그런 국민을 ‘잠재적 폭도’로 취급하는 발언을 하다니, 어떻게 그런 ‘국민 모독적’ 발상이 가능할까 놀라울 따름입니다.
윤 전 총장은 검찰총장 당시 툭하면 ‘국민의 검찰’이란 말을 강조했습니다. 그 국민은 어떤 국민을 말했던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필요할 땐 국민이란 이름을 활용하지만 실제로는 국민을 섬기는 마음이 없는 ‘정치적 위선자’의 그림자가 보입니다. 국민을 수사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비뚤어진 검사의 시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도 됩니다. 윤 전 총장은 자신이 ‘헌법주의자’라는 말도 자주 했습니다. 헌법의 기둥을 하나만 남긴다면 ‘주권자 국민’입니다. 헌법주의자가 국민에 대해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율배반입니다.
‘민란’ 발언에 대한 비판이 일었음에도 윤 전 총장은 아직도 제대로 해명이나 사과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이라고 봅니다.
검증 본격화하면서 지지율 뚜렷한 하락세
자질과 역량 이외에도 윤 전 총장은 본인과 가족의 도덕성 검증에서 숱한 의혹에 휩싸여 있습니다. 이번 주만 해도 조남욱 전 삼부토건 회장과의 부적절한 관계,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사건 개입 의혹 등 본인과 관련된 새로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한겨레>는 윤 전 총장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2과장을 지내던 2011년 전후로 삼부토건 조남욱 전 회장한테서 여러 차례 골프 접대와 향응을 받은 정황을 취재해 보도했습니다. 삼부토건이 검찰 수사를 받던 시기와도 겹칩니다. 조 전 회장의 일정표 등을 근거로 한 보도인데, 윤 전 총장 쪽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일정표”라며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정표는 실제 조 전 회장실에서 기록하고 사용한 문서로, 기록에 등장하는 조 전 회장의 공식 일정은 대부분 실제로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사건은 ‘논썰’에서도 다룬 바 있고 많은 독자분들이 아실 겁니다. 윤 전 총장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윤대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의 친형인 윤우진 전 세무서장이 2012년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는데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6번이나 기각하고, 급기야 해외 도피를 했다가 5달 만에 체포돼 국내로 송환됐는데도 검찰이 구속영장을 또 기각한 희대의 ‘제 식구 봐주기’ 사건입니다. 그 윤우진씨가 <뉴스타파>와 만나 ‘윤 전 총장이 당시 변호사를 소개해줬다’고 증언한 것입니다. 현재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검사가 피의자에게 변호사를 소개하는 건 변호사법 위반에 해당하는 범죄인 만큼 이 부분도 수사를 통해 명확히 규명돼야 할 대목입니다.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은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달여 만에 지지율이 60% 수준으로 떨어진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지난 17~18일 실시된 리얼미터의 차기 대선주사 선호도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를 보면, 윤 전 총장은 22%로 지난달 7~8일 조사보다 13.1%포인트 떨어졌습니다. 양자 가상대결에서도 6월 조사에선 윤석열 전 총장 51.2%, 이재명 경기도지사 33.7%였고,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는 윤 전 총장 52.4%, 이 전 대표 30%로 윤 전 총장이 모두 크게 앞섰습니다. 그러나 7월 조사에선 이재명 지사 43%, 윤석열 전 총장 41%, 이낙연 전 대표와는 이 전 대표 42.3%, 윤 전 총장 41.2%로 모두 오차범위 내 접전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해 보면, 윤 전 총장 지지층 이탈은 중도·진보층, 호남, 여성, 2030세대에서 뚜렷합니다.
윤석열의 ‘강경 보수층’ 집중 전략, 약 될까 독 될까
이런 상황이 윤 전 총장의 부적절 발언이 나온 한 배경을 설명해주는 듯합니다. 앞서 세 가지로 분석해본 윤 전 총장의 발언은 하나의 공통분모를 갖습니다. 이른바 ‘옛 보수층’에 호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여전히 옹호하고, 강한 친재벌 성향을 보이며, 지역주의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윤 전 총장은 현재 지지율을 떠받치고 있는 핵심 지지층인 이들에게 더 집중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지지율 하락을 막거나 둔화시키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지지율 반등이나 외연 확장에는 장애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윤 전 총장이 어쩔 수 없이 빠진 딜레마인지, 아니면 그의 인물 됨됨이와 가치 지향에 따른 필연적 경로인지는 아직 확언하기 어렵습니다. 전자라면 국민 앞에 좀더 솔직해지고 새로운 전략으로 비전을 담금질하면서 타개해야 할 텐데, 지금까지 드러난 한계를 극복하기가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만약 후자라면 윤 전 총장이 자임했던 정의의 법 집행자, 헌법주의자, 국민에 복무한 공직자라는 표상들이 모두 헛것이었음을 확인할 따름입니다.
위성동 기자
“코로나가 대구에서 시작됐는데 잡혔다. 우리나라 사람이 그런 얘기 많이 한다. ‘초기 확산이 대구 아니고 다른 지역이었다면 질서있는 처치나 진료가 안 되고 아마 민란부터 일어났을 거’라고 할 정도로.”(대구 동산병원 의료진과 대화)
“(대구)지역에서 배출한 대통령에 대한 수사 소추를 했던 것에 대해 섭섭하거나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마음속으로 송구한 부분도 없지 않다.”(<대구KBS> 인터뷰)
“스타트업 청년들을 만났더니, 주 52시간 제도 시행에 예외조항을 둬서 근로자가 조건을 합의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토로하더라.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매일경제> 인터뷰)
“경영진을 직접 사법처리하는 문제에 대해선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을 형사처벌하기보다는 법인에 고액 벌금을 부과하는 등 법인의 형사 책임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형사법이 개정돼야 한다.”(<매일경제> 인터뷰)
‘정치인 윤석열’의 자질과 역량을 드러내는 발언들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세가지 중대한 흠결을 보게 됩니다.
먼저, ‘주 120시간 노동’ 발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나라를 이끌 지도자로 준비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주 52시간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해마다 300명 가까운 노동자가 과로로 숨지고, 연간 노동시간이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선두권인 우리나라에서 주 52시간제는 누군가에게 삶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윤 전 총장은 게임업체를 예로 들었는데요, 그리 오래지 않은 2016년 게임업체 20대 노동자가 과로로 인한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사건이 있습니다. 발병 4주 전에는 주 78시간, 발병 7주 전에는 주 89시간을 일하는 등 불규칙하고 과도한 초과근무를 한 사실에 근거해 업무상 질병, 즉 산업재해로 인정됐습니다. ‘크런치 모드’라고 불리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집중 장시간 노동은 여러차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던 악습입니다.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 문제는 지금 당장의 사회적 이슈입니다.
이 같은 우리 사회의 과로 노동 실태, 노동현장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라도 있다면 ‘120시간’이라는 허황된 수치는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법정 노동시간을 18년 만에 주 68시간제에서 주 52시간제로 낮춘 배경에는 많은 국민이 공유하는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가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국가 경제를 위해, 회사를 위해, 가족 부양을 위해 밤낮없이 기계처럼 일하라고 하는 산업화 시대의 ‘국민 동원식 노동관’은 이제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윤 전 총장의 인식은 그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퇴행적 노동관입니다.
논란이 커지자 윤 전 총장은 이런 해명을 내놨습니다.
“주 120시간을 근무하는 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이야기로서 제게 그 말을 전달한 분들도 ‘주 52시간제를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데 따른 현장의 어려움’을 강조한 것이지 실제로 120시간씩 과로하자는 취지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이야기’라면서 언론 인터뷰에서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했다니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인터뷰 영상을 보면, 윤 전 총장은 일일이 곱셈까지 해가며 120시간 이야기를 합니다. 또 ‘주 52시간제를 획일적으로 적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미 정부는 유연근로제, 특별근로제, 선택근로제 등 다양한 예외 조처를 마련해 시행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 대해 윤 전 총장이 제대로 숙고하지 않은 채 인상비평 수준의 발언을 가볍게 던지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준비 부족의 한 단면을 드러낸 것입니다.
두 번째, ‘자기 부정’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기소에 대해 윤 전 총장은 이번 대구 방문에서 “검사로서 형사법을 기준으로 사건을 처리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서 일했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은 검찰이 검사 31명 등 150여명으로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검찰의 명운을 걸고 했던 수사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마지못해 수사를 했다는 식의 궁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송구한 부분도 없지 않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윤 전 총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수사하다 좌천되는 등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당시 국정감사장에서 수사 외압에 대해 폭로하면서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도 남겼죠. 그렇게 당당했던 ‘검사 윤석열’이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 자신의 검사 인생에 족적으로 남을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해 비굴한 해명을 하고 있는 모습은 보기에 딱합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조차 “‘님아 그 (탄핵의) 강에 빠지지 마오’ 제발 그랬으면 하는 생각이었는데 다시 그 강으로 들어가는 취지의 발언이 나왔다”며 “윤 전 총장이 (박 전 대통령 수사 등에 대해) 조금 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충고할 정도입니다.
윤 전 총장이 기업 범죄와 관련해 ‘경영진 형사처벌 면제’ 주장을 한 것도 자기 부정입니다. 윤 전 총장은 이른바 ‘특수통’ 검사였고, 특수부 검사들의 주된 임무가 기업·경제범죄를 처단하는 것입니다. 그가 검찰총장 취임 일성으로 내세운 말도 이랬습니다. “시장의 룰이 깨지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진다. 룰을 위반하는 반칙 행위는 묵과할 수 없다.” 대기업 등의 시장질서 교란·파괴 행위와 갑질 등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 윤 전 총장이 이번 <매일경제> 인터뷰에서는 ‘기업 범죄’에 대해 경영진을 처벌하지 말고 법인에만 벌금을 부과하자고 했습니다. 경영진에 대해서는 나중에 주주들이 민사소송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으로 책임을 묻자고 합니다. 형사처벌로도 근절되지 않는 기업 범죄를 이런 식으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대기업 총수나 경영진이 벌금, 배상금 따위를 두려워하겠습니까. 또 우리가 보아온 재벌 총수의 범법행위 중 상당수는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사익을 챙기는 배임·횡령입니다. 피해자인 법인을 처벌하자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한해 800~900명에 이르는 산업재해 사망 사고에 대한 대처로 경영진의 책임을 강화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든 시점에서, 경영진 면책론을 들고나온 것은 국민의 안전을 경시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윤 전 총장이 이번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시카고학파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철학에 공감한다’고 했는데 총장 취임 당시 ‘취임사 설명자료’에서도 “시카고학파인 밀턴 프리드먼의 사상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는 점입니다. 그때와 지금, 같은 학자의 사상을 언급하며 정반대의 메시지를 내놓은 셈입니다. 많이 헛갈립니다.
이렇게 자신의 과거를 전면 부정하면서 국민들에게 무엇을 보고 지지해달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세 번째는 ‘민란’ 발언입니다. 국민을 대하는 자세가 너무나 경박합니다.
“(코로나19) 초기 확산이 대구 아니고 다른 지역이었다면 질서있는 처치나 진료가 안 되고 민란부터 일어났을 것”이라는 윤 전 총장의 발언은 충격 그 자체입니다. 코로나19에 대처한 대구의 시민의식을 평가하고 1차 대유행 당시 대구가 겪은 고통을 위로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역을 가르고 지역 정서를 자극해 표를 얻으려는 태도는 정치적 적폐인 지역주의입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번 발언이 단순한 지역주의를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윤 전 총장의 ‘국민관’을 보여줍니다. 국민을 코로나19 확산에 질서를 잃고 민란을 일으킬 존재로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국민은 놀라운 인내와 희생으로 코로나19 팬데믹과 싸우고 있습니다. 소중한 일상을 잃어버리고 직접적인 경제적 타격을 받으면서도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묵묵히 방역에 동참하고 있는 국민들의 모습은 눈물겨울 정도입니다. 그런 국민을 ‘잠재적 폭도’로 취급하는 발언을 하다니, 어떻게 그런 ‘국민 모독적’ 발상이 가능할까 놀라울 따름입니다.
윤 전 총장은 검찰총장 당시 툭하면 ‘국민의 검찰’이란 말을 강조했습니다. 그 국민은 어떤 국민을 말했던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필요할 땐 국민이란 이름을 활용하지만 실제로는 국민을 섬기는 마음이 없는 ‘정치적 위선자’의 그림자가 보입니다. 국민을 수사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비뚤어진 검사의 시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도 됩니다. 윤 전 총장은 자신이 ‘헌법주의자’라는 말도 자주 했습니다. 헌법의 기둥을 하나만 남긴다면 ‘주권자 국민’입니다. 헌법주의자가 국민에 대해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율배반입니다.
‘민란’ 발언에 대한 비판이 일었음에도 윤 전 총장은 아직도 제대로 해명이나 사과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이라고 봅니다.
검증 본격화하면서 지지율 뚜렷한 하락세
자질과 역량 이외에도 윤 전 총장은 본인과 가족의 도덕성 검증에서 숱한 의혹에 휩싸여 있습니다. 이번 주만 해도 조남욱 전 삼부토건 회장과의 부적절한 관계,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사건 개입 의혹 등 본인과 관련된 새로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한겨레>는 윤 전 총장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2과장을 지내던 2011년 전후로 삼부토건 조남욱 전 회장한테서 여러 차례 골프 접대와 향응을 받은 정황을 취재해 보도했습니다. 삼부토건이 검찰 수사를 받던 시기와도 겹칩니다. 조 전 회장의 일정표 등을 근거로 한 보도인데, 윤 전 총장 쪽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일정표”라며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정표는 실제 조 전 회장실에서 기록하고 사용한 문서로, 기록에 등장하는 조 전 회장의 공식 일정은 대부분 실제로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사건은 ‘논썰’에서도 다룬 바 있고 많은 독자분들이 아실 겁니다. 윤 전 총장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윤대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의 친형인 윤우진 전 세무서장이 2012년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는데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6번이나 기각하고, 급기야 해외 도피를 했다가 5달 만에 체포돼 국내로 송환됐는데도 검찰이 구속영장을 또 기각한 희대의 ‘제 식구 봐주기’ 사건입니다. 그 윤우진씨가 <뉴스타파>와 만나 ‘윤 전 총장이 당시 변호사를 소개해줬다’고 증언한 것입니다. 현재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검사가 피의자에게 변호사를 소개하는 건 변호사법 위반에 해당하는 범죄인 만큼 이 부분도 수사를 통해 명확히 규명돼야 할 대목입니다.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은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달여 만에 지지율이 60% 수준으로 떨어진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지난 17~18일 실시된 리얼미터의 차기 대선주사 선호도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를 보면, 윤 전 총장은 22%로 지난달 7~8일 조사보다 13.1%포인트 떨어졌습니다. 양자 가상대결에서도 6월 조사에선 윤석열 전 총장 51.2%, 이재명 경기도지사 33.7%였고,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는 윤 전 총장 52.4%, 이 전 대표 30%로 윤 전 총장이 모두 크게 앞섰습니다. 그러나 7월 조사에선 이재명 지사 43%, 윤석열 전 총장 41%, 이낙연 전 대표와는 이 전 대표 42.3%, 윤 전 총장 41.2%로 모두 오차범위 내 접전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해 보면, 윤 전 총장 지지층 이탈은 중도·진보층, 호남, 여성, 2030세대에서 뚜렷합니다.
윤석열의 ‘강경 보수층’ 집중 전략, 약 될까 독 될까
이런 상황이 윤 전 총장의 부적절 발언이 나온 한 배경을 설명해주는 듯합니다. 앞서 세 가지로 분석해본 윤 전 총장의 발언은 하나의 공통분모를 갖습니다. 이른바 ‘옛 보수층’에 호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여전히 옹호하고, 강한 친재벌 성향을 보이며, 지역주의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윤 전 총장은 현재 지지율을 떠받치고 있는 핵심 지지층인 이들에게 더 집중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지지율 하락을 막거나 둔화시키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지지율 반등이나 외연 확장에는 장애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윤 전 총장이 어쩔 수 없이 빠진 딜레마인지, 아니면 그의 인물 됨됨이와 가치 지향에 따른 필연적 경로인지는 아직 확언하기 어렵습니다. 전자라면 국민 앞에 좀더 솔직해지고 새로운 전략으로 비전을 담금질하면서 타개해야 할 텐데, 지금까지 드러난 한계를 극복하기가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만약 후자라면 윤 전 총장이 자임했던 정의의 법 집행자, 헌법주의자, 국민에 복무한 공직자라는 표상들이 모두 헛것이었음을 확인할 따름입니다.
위성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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