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12화 1주 한 번 플라스틱 쓰레기 사진 찍기가 낳은 성공적 결과
2021.07
29
뉴스관리팀장
13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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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주째, 1주일에 한 번 4인 가족의 플라스틱 배출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 플라스틱 사진을 찍다보니, 바닷가를 산책할 때에도 쓰레기가 눈에 밟히게 됐다.
[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탄소 다이어트는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부터.
2021년 7월 29일. 인류는 1년치 자원을 모두 소모했다. 7월 30일부터 배출되는 탄소를, 지구의 산과 바다는 더 이상 흡수해 줄 수 없다. 자정 능력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지구 생태발자국 네트워크(Global footprint network. 아래 GFN)는 매년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을 계산하는데, 올해는 7월 29일이다. 7월 30일부터 지구는 탄소 자정 능력을 잃고, 우리는 후손들이 써야 할 자원을 당겨 쓰게 된다.
7월 29일이라니! 너무 빠르다. 걱정이다. 하지만 한국에겐 이마저도 꿈같은 숫자다. 7월 29일은 전세계를 기준으로 한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일 뿐, 우리는 세계 평균보다 더 빠르게 자원을 소모하고 있다. 2021년 한국의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은 언제일까? 4월 5일이었다. 이미 지나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나 하나 달라진다고 세상이 꿈쩍하겠냐만, 살던 대로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속절없이 무너지는 지구를 지켜볼 수만은 없어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플라스틱부터 줄여보기로 했다. 플라스틱은 썩지도 않은 채 지구 곳곳을 떠돌아 다닌다는 점도 문제지만, 생산과 유통, 폐기 단계에서 탄소를 배출한다는 점도 문제다. 플라스틱을 줄이면 미세 플라스틱과 탄소 배출물을 동시에 줄일 수 있다.
그렇게 나는 2020년 11월 23일부터 플라스틱 쓰레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쉬웠다. 그저 1주일에 한 번씩, 우리 네 식구가 썼던 플라스틱(플라스틱, 비닐, 스티로폼)을 씻고 말린 후, 사진 한 장으로 남겼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SNS에 사진을 공개하고, 글로 간단하게 기록했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미약한 실천일 게 뻔하지만, 이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만 같았다.
여태것 플라스틱 사진을 34주차까지 찍었다(7월 25일 기준). 쉽고, 보람도 있긴 한데... 솔직히 귀찮다. 그렇지만 그만 두기도 싫다. 해보니까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살림에 보탬이 된다. 플라스틱으로 된 물건을 사려니 지구를 망치는 것만 같은 죄책감이 들어 소비가 줄었고, 자연스럽게 생활비도 줄었다(관련 기사: '플라스틱 사진찍기 10주... 생활비가 줄었습니다'
생활비만 달라진 게 아니었다. 갑자기 농사가 짓고 싶어졌다. 플라스틱 사진을 찍다보니, 대부분의 플라스틱은 식품 포장 용기였다. 방울 토마토 한 팩에도 플라스틱이 따라왔고, 애호박 하나마저 비닐랩으로 둘둘 말려있었다. 사진을 찍다보니 종종 플라스틱이나 비닐 포장 없이 풋고추도, 오이도, 쌈채소도 먹고 싶었다.
플라스틱 사진을 찍다가 농사를 짓게될 줄이야. 단순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플라스틱을 줄여보자는 다짐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데, 의욕이 하늘을 찔러 농사까지 지어버렸다. 사실 반쯤 정신나간 생각이었다. 농사가 어디 쉬운 일인가? 게다가 우리 부부는 맞벌이다. 평일 내내 일하다가 쉬는 날에도 농삿일을 하자고? 그것도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려고?
과한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플라스틱이 눈에 밟혔다. 나는 더 할 수 있는 만큼만 일단 해보기로 했다. 지구 날씨가 미쳐 돌아가는 만큼, 나도 올해는 미친척하고 안 하던 짓을 한 거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친정 부모님께서 농사를 지으신다는 점이었다. 부모님께 밭 한 이랑을 빌려, 농사짓는 방법도 곁에서 배워갔다.
맞벌이라 힘든데 농사마저 판을 벌였으니 어쩌나 싶었지만, 의외로 농사는 재미있었다. 아마 농사가 생업이었다면 고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식구 먹을 만큼만 지을 때에는 농사도 여가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농사에 '원예치료'나 '흙멍'(흙을 보며 멍때리는 일)이라는 별명을 붙이며, 금요일 퇴근길에 곧장 밭으로 달려가게 되었다. 그만큼 농사가 재밌었다. 힘들기는커녕 직장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플라스틱은 얼마만큼 줄었을까? 나름 성공적이었다. 플라스틱 '제로'까지는 아니지만, 확실히 쓰레기가 줄었다. 똑같은 분리수거 통인데, 쓰레기 차는 속도가 줄어들어 2주에 한 번 쓰레기를 비울 때도 있다. 또 도시에서는 다 먹은 찜닭 일회용기는 쓰레기지만, 밭으로 가면 감자와 완두콩을 담을 다회용기가 된다. 농사를 짓다보니 일회용품도 재사용하게 됐다.
나중에 알게된 것이지만, 푸드 마일(food miles: 식품의 생산지에서부터 생산, 운송, 유통을 거쳐 소비자의 식탁에 이르기까지의 거리)이 줄어듦으로써 탄소 배출량도 줄었다. 밭에서 우리집까지 자동차로 30분 거리니, 푸드 마일이 아주 짧은 셈이다. GFN은 푸드 마일이 320km 정도면 지구에 무해하다고 판단한다. 사실 농사까지 짓지는 않더라도 국산 식료품을 먹으면 탄소 배출량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
플라스틱 배출기록 사진을 찍고 농사를 지어봤자, 더운 날 에어컨 한 번 틀면 말짱 도루묵 아니냐는 생각도 해봤다. 실제로 환경 기사를 쓰다보면 이런저런 노력을 해봤자 완벽하게 친환경적인 삶을 살지 못 하는데 자기만족과 위선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많이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완벽할 수 없다는 인간의 한계가, 하지 않을 핑계가 될 수는 없다. 나도 처음에는 텀블러를 꾸준히 쓰는 데서 시작했다. 텀블러를 챙기다 보니 어쩌다 일회용컵 한 번을 쓰면 속상하다. 나도 모르게 환경 감수성이 생긴 것이다.
텀블러를 챙기는 일은, 음식점에서 일회용기 대신 밀폐용기에 담아오는 일로 발전했다. 다음으로는 공원에서 쓰레기를 줍고 싶어졌고, 쓰레기를 줍다 보니 플라스틱 사진을 찍게 됐다. 플라스틱 사진을 찍다보니 어쩌다 농사도 지어보고, 난생처음 올 여름 내 옷은 온라인 중고의류 매장에서 마련해봤다.
환경단체에 매달 3만 원씩 작은 돈이나마 기부를 하고, 육식은 탄소 배출량이 높다기에 붉은 육류 섭취를 줄이게 됐다. 물론 에어컨 한 번 켜는 일도 살떨린다. 직장에서 혼자 있을 때에는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연다. 항상 잘 하지는 못 해도, 일상의 사소한 면면들이 눈에 밟힌다.
완벽하지 않음은 '위선'이 아니라 '최선'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환경에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는 조롱 대신 격려가 필요하다. 지구를 지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법과 제도 그리고 기업의 변화지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시민(이자 소비자)의 문화가 먼저 바뀌는 것이다.
지구가 확실하게 병들어가는 징후가 곳곳에서 드러날 때,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하자. 2022년의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은 올해보다 뒤로 미뤄지길 꿈꾸면서.
유해운 기자.
▲ 플라스틱 사진을 찍다보니, 바닷가를 산책할 때에도 쓰레기가 눈에 밟히게 됐다.
[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탄소 다이어트는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부터.
2021년 7월 29일. 인류는 1년치 자원을 모두 소모했다. 7월 30일부터 배출되는 탄소를, 지구의 산과 바다는 더 이상 흡수해 줄 수 없다. 자정 능력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지구 생태발자국 네트워크(Global footprint network. 아래 GFN)는 매년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을 계산하는데, 올해는 7월 29일이다. 7월 30일부터 지구는 탄소 자정 능력을 잃고, 우리는 후손들이 써야 할 자원을 당겨 쓰게 된다.
7월 29일이라니! 너무 빠르다. 걱정이다. 하지만 한국에겐 이마저도 꿈같은 숫자다. 7월 29일은 전세계를 기준으로 한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일 뿐, 우리는 세계 평균보다 더 빠르게 자원을 소모하고 있다. 2021년 한국의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은 언제일까? 4월 5일이었다. 이미 지나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나 하나 달라진다고 세상이 꿈쩍하겠냐만, 살던 대로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속절없이 무너지는 지구를 지켜볼 수만은 없어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플라스틱부터 줄여보기로 했다. 플라스틱은 썩지도 않은 채 지구 곳곳을 떠돌아 다닌다는 점도 문제지만, 생산과 유통, 폐기 단계에서 탄소를 배출한다는 점도 문제다. 플라스틱을 줄이면 미세 플라스틱과 탄소 배출물을 동시에 줄일 수 있다.
그렇게 나는 2020년 11월 23일부터 플라스틱 쓰레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쉬웠다. 그저 1주일에 한 번씩, 우리 네 식구가 썼던 플라스틱(플라스틱, 비닐, 스티로폼)을 씻고 말린 후, 사진 한 장으로 남겼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SNS에 사진을 공개하고, 글로 간단하게 기록했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미약한 실천일 게 뻔하지만, 이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만 같았다.
여태것 플라스틱 사진을 34주차까지 찍었다(7월 25일 기준). 쉽고, 보람도 있긴 한데... 솔직히 귀찮다. 그렇지만 그만 두기도 싫다. 해보니까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살림에 보탬이 된다. 플라스틱으로 된 물건을 사려니 지구를 망치는 것만 같은 죄책감이 들어 소비가 줄었고, 자연스럽게 생활비도 줄었다(관련 기사: '플라스틱 사진찍기 10주... 생활비가 줄었습니다'
생활비만 달라진 게 아니었다. 갑자기 농사가 짓고 싶어졌다. 플라스틱 사진을 찍다보니, 대부분의 플라스틱은 식품 포장 용기였다. 방울 토마토 한 팩에도 플라스틱이 따라왔고, 애호박 하나마저 비닐랩으로 둘둘 말려있었다. 사진을 찍다보니 종종 플라스틱이나 비닐 포장 없이 풋고추도, 오이도, 쌈채소도 먹고 싶었다.
플라스틱 사진을 찍다가 농사를 짓게될 줄이야. 단순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플라스틱을 줄여보자는 다짐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데, 의욕이 하늘을 찔러 농사까지 지어버렸다. 사실 반쯤 정신나간 생각이었다. 농사가 어디 쉬운 일인가? 게다가 우리 부부는 맞벌이다. 평일 내내 일하다가 쉬는 날에도 농삿일을 하자고? 그것도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려고?
과한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플라스틱이 눈에 밟혔다. 나는 더 할 수 있는 만큼만 일단 해보기로 했다. 지구 날씨가 미쳐 돌아가는 만큼, 나도 올해는 미친척하고 안 하던 짓을 한 거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친정 부모님께서 농사를 지으신다는 점이었다. 부모님께 밭 한 이랑을 빌려, 농사짓는 방법도 곁에서 배워갔다.
맞벌이라 힘든데 농사마저 판을 벌였으니 어쩌나 싶었지만, 의외로 농사는 재미있었다. 아마 농사가 생업이었다면 고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식구 먹을 만큼만 지을 때에는 농사도 여가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농사에 '원예치료'나 '흙멍'(흙을 보며 멍때리는 일)이라는 별명을 붙이며, 금요일 퇴근길에 곧장 밭으로 달려가게 되었다. 그만큼 농사가 재밌었다. 힘들기는커녕 직장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플라스틱은 얼마만큼 줄었을까? 나름 성공적이었다. 플라스틱 '제로'까지는 아니지만, 확실히 쓰레기가 줄었다. 똑같은 분리수거 통인데, 쓰레기 차는 속도가 줄어들어 2주에 한 번 쓰레기를 비울 때도 있다. 또 도시에서는 다 먹은 찜닭 일회용기는 쓰레기지만, 밭으로 가면 감자와 완두콩을 담을 다회용기가 된다. 농사를 짓다보니 일회용품도 재사용하게 됐다.
나중에 알게된 것이지만, 푸드 마일(food miles: 식품의 생산지에서부터 생산, 운송, 유통을 거쳐 소비자의 식탁에 이르기까지의 거리)이 줄어듦으로써 탄소 배출량도 줄었다. 밭에서 우리집까지 자동차로 30분 거리니, 푸드 마일이 아주 짧은 셈이다. GFN은 푸드 마일이 320km 정도면 지구에 무해하다고 판단한다. 사실 농사까지 짓지는 않더라도 국산 식료품을 먹으면 탄소 배출량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
플라스틱 배출기록 사진을 찍고 농사를 지어봤자, 더운 날 에어컨 한 번 틀면 말짱 도루묵 아니냐는 생각도 해봤다. 실제로 환경 기사를 쓰다보면 이런저런 노력을 해봤자 완벽하게 친환경적인 삶을 살지 못 하는데 자기만족과 위선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많이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완벽할 수 없다는 인간의 한계가, 하지 않을 핑계가 될 수는 없다. 나도 처음에는 텀블러를 꾸준히 쓰는 데서 시작했다. 텀블러를 챙기다 보니 어쩌다 일회용컵 한 번을 쓰면 속상하다. 나도 모르게 환경 감수성이 생긴 것이다.
텀블러를 챙기는 일은, 음식점에서 일회용기 대신 밀폐용기에 담아오는 일로 발전했다. 다음으로는 공원에서 쓰레기를 줍고 싶어졌고, 쓰레기를 줍다 보니 플라스틱 사진을 찍게 됐다. 플라스틱 사진을 찍다보니 어쩌다 농사도 지어보고, 난생처음 올 여름 내 옷은 온라인 중고의류 매장에서 마련해봤다.
환경단체에 매달 3만 원씩 작은 돈이나마 기부를 하고, 육식은 탄소 배출량이 높다기에 붉은 육류 섭취를 줄이게 됐다. 물론 에어컨 한 번 켜는 일도 살떨린다. 직장에서 혼자 있을 때에는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연다. 항상 잘 하지는 못 해도, 일상의 사소한 면면들이 눈에 밟힌다.
완벽하지 않음은 '위선'이 아니라 '최선'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환경에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는 조롱 대신 격려가 필요하다. 지구를 지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법과 제도 그리고 기업의 변화지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시민(이자 소비자)의 문화가 먼저 바뀌는 것이다.
지구가 확실하게 병들어가는 징후가 곳곳에서 드러날 때,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하자. 2022년의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은 올해보다 뒤로 미뤄지길 꿈꾸면서.
유해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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