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자본과 기업에 어떻게 책임지울 것인가.
20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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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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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감축 목표치 너머를 봐야 한다
국회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법안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미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출범했고 한국정부는 당장 11월 유엔기후변화총회에 이전보다 강화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들고 가야 하는 상황임에도 이를 뒷받침할 법률안 논의를 이제야 국회에서 시작한 것이다. 현재까지 7건의 관련 법안들이 발의되었고, 정부는 이를 종합한 '탄소중립 녹색성장법'(가칭)을 제시한 상태다. 국제사회의 압력에 밀려 허겁지겁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제시해야 하는 상황에서, 법안은 졸속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법안 통과 여부를 넘어 법안을 둘러싸고 등장한 쟁점들을 통해, 앞으로 긴 싸움이 될 기후운동의 원칙과 방향을 벼리는 일이 중요한 시점이다.
탄소중립 녹색성장법을 둘러싼 쟁점들
기후위기의 원인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지목되고, 해결책으로 감축과 배출제로, 탄소중립 등이 제시된다. 그래서 언제까지 얼마나 줄일 것인지, 국가별로 이를 약속하는 게 유엔기후체제이다. 이렇듯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는 기후위기 대응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다. 현재 논의되는 법안에서 불거지는 주요 쟁점도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얼마로 정할 것인지, 목표치를 법안에 명시할 것인지다. 정부가 기존 감축 목표를 상향하겠다고 국제사회에 공언한 상황에서, 여당은 이를 법안보다는 시행령에 담으려고 한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지구 온도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을 요구해왔으며, 최소한 2010년 대비 50% 이상 감축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또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시행령에 명시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전혀 지키지 않았던 선례를 들며, 법안 명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감축 목표치만큼이나 중요한 게 어떻게 감축할 것인지이다. 아무리 높은 감축치를 선언하거나 명시하더라도 이를 실현할 경로가 부재하다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법안을 둘러싼 두 번째 쟁점이 등장한다. 녹색성장이다. 온실가스 배출의 대부분을 차지해온 산업과 자본의 탈탄소 전환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녹색성장전략은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공유하는 바이다. 탈탄소 전환 '유도'는 재화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자본의 통제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진다. 침해는커녕 전폭적인 지원이 이루어진다. 그동안 시장이 계산하지 않았던 생태적 비용을 가격으로 환산해서 반영하겠다는 '탄소 가격제' 아이디어는 탄소배출권 거래제로 시행되었지만, 배출권을 과도하게 할당하면서 온실가스 최대 배출기업인 포스코에게 수백억 원의 이익을 안겨주었다. 그린뉴딜과 같은 녹색산업 육성책은 정부 재정을 통한 각종 보조금 지급, 기반시설 구축, 세제혜택 등을 망라한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게 아니라, 대기 중으로 퍼지지 않게 포집하여 저장하겠다는 탄소포집저장기술과 같은 불확실하고 위험한 기술도 녹색 시장을 창출하고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중요한 녹색 기술이 된다. 현재 논의되는 법안에서도 이러한 녹색 기술 개발과 사업화에 대한 조항이 상당한 비중으로 포함되어 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만큼이나 실현경로가 중요하다
기업과 자본의 주도권을 보장하는 이러한 시장기반 해법은 유럽과 미국, 중국 등에서 녹색 경제의 규모를 키우는데는 성공했지만,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줄이는데는 실패했다. 지구적 상품생산 시스템에서는 탄소배출조차 외주화가 가능한 것이다. '자본'은 끊임없이 자신을 불리기 때문에 자본이다. 이는 경제성장에 대한 '집착'이나, 탐욕스러운 '이윤추구'와 같은 윤리적 태도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과 자연을 자본주의라는 고유의 방식으로 착취하고 수탈해 부를 축적해야만 살아남는 이 체제의 구조가 만들어낸 문제다. 화석연료는 시장 논리로 대체되거나 폐기되지 않는다. 이윤을 쌓을 수만 있다면 녹색산업이든 회색산업이든 가리지 않는다. 그렇게 경제가 성장하면 모두가 행복하다는 게 자본주의다.
자본은 이제 국가를 넘어 지구적 차원에서 함께 만들어낸 사회적 부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통제권은 오로지 자본 소유자에게 귀속된다. 1.5도 목표에 부합하는 온실가스 대폭 감축 더 나아가 배출제로를 위해서는 사회적 필요에 기반한 재화 생산과 소비 계획, 산업전환과 대체기술개발에 따른 비용 부담이 기업과 자본을 포함한 전 사회적인 차원에서 논의되고 결정되어야 하지만 철옹성 같은 자본 소유권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정부가 이러한 변화를 시도할 의지조차 없고 기존 사회 시스템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만 강조될 때, 해법은 자연스럽게 녹색 시장 육성과 거대 자본이기도 한 핵에너지 활용, 녹색 기술 개발과 시장 선점 중심으로 짜이게 된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는 '탄소중립 녹색성장법'을 둘러싼 지형이 정확히 이러하다.
시장 논리를 넘어,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개입으로
사실 기후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본과 기업이 바뀌지 않고서는 기후위기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녹색금융, 녹색기업, 녹색시장을 활성화하려는 시도에 기대를 걸기도 하고, 쉽게 접근 가능한 소비자 운동에 동참하기도 한다. 자본과 기업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에서다. 한편 자본과 기업에 기후위기의 책임을 묻기 위한 노력은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와 손실에 대한 보상책임을 법률에 명시하자는 주장으로도 등장한다. 모두 자본에 대한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일 테지만 시장 논리에 따른 개입과 영향력 행사, 피해보상 프레임은 도리어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소비자 권리, 자본 소유권에 기반한 권리 주장은 마찬가지 이유로 '사회적 부'에 대한 자본 소유주의 독점권을 막지 못한다. 기후위기의 책임을 비용으로 계산하고 청구할 수 있다는 구상은 반대로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면 기후위기 유발행위를 지속할 수 있다는 논리로도 이어진다.
그럼에도 자본과 기업에 기후위기의 책임을 묻기 위한 운동은 더욱 필요하다. 문제는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 구체적을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변화로 이어져야 하는지다. 국제사회에서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시장기반 기후변화 대응 해법은 사실상 실패했다. 녹색 시장은 성장했지만 온실가스 배출은 줄이지 못했다. 재화와 서비스 생산을 조직하는 권한을 독점한 자본이 개별 기업 차원에서 스스로 온실가스 감축과 배출제로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재화 생산과 유통에 사회가 직접 개입해야 한다. 현재 정부에 의한 시장 규제들이 주로 사후적으로 결과에 따른 책임을 묻는 방식이라면, 기후대응은 사전적 조치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사실상 생산과 유통, 소비에 대한 사회적 개입과 통제권의 확대를 의미한다.
기후운동은 삶의 위기에 맞서는 시민들의 역량과 힘을 이런 방향으로 조직하고 쌓아가야 한다. 농민들은 지속가능한 대안농업으로서 먹거리 생산과 유통, 소비를 새롭게 조직하자는 '푸드플랜' 운동을 이미 시작해왔다. 최근 금속 산업 노동자들은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한 공동결정법'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실질적인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개입으로까지 이어지기에는 쉽지 않은 과정일 테지만, 기후위기의 책임을 자본에 묻는다는 것은 이렇듯, 기후위기의 원인인 시장과 자본에 생산을 조직하고 계획할 권한을 사회에 양도하라는 권력 관계의 변화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기후위기의 '구조적 책임'을 겨냥하는 인권기반 접근
정부가 제시한 '탄소중립 녹색성장법'에서 규정하는 '기후정의'는 기후위기의 책임을 자본과 정부에게 지우지 않을뿐더러, 시민들을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로 규정하지도 않는다. '사회계층별 책임이 다름을 인정'하고 '이행부담을 공정하게 나누어 평등을 보장'하는 것을 기후정의라고 규정하고 있다. 현행 재산세, 소득세 부과 원칙과 다르지 않은 것을 기후정의라고 하는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도 마찬가지다. '이행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과 산업 노동자를 보호'하여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이라고 규정한다. 이미 피해는 전제되어 있다.
인권운동은 '모든 사람'을 보편적 인권의 '권리주체'로 규정하고 주로 '국가'를 인권보장의 '의무주체'로 규정해왔다. 그런데 이러한 개념틀이 기후위기에 적용되자 시민들은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인권침해'를 증명해야 권리주체 또는 취약계층이 되고, '의무주체'로 정부 외에 자본을 드러내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특히 권리가 생계권, 주거권과 같은 목록화된 권리에 대한 침해와 피해를 지칭하게 되고, 정부와 자본이 이를 보장하는 방식이 사후적 '피해보상'이 되는 구조에서는 기후위기를 야기한 구조적 권력 관계의 변화를 꾀하기는 어려워진다.
'권리주체'와 '의무/책임주체'를 규정하는 인권 개념은 오히려 기후위기의 '구조적 책임'을 겨냥할 때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인권의 관점에서 '자본'은 기후위기와 온실가스 배출의 '책임'을 져야 하는 대상이며 '시민'은 기후위기 시대를 평등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를 지닌 주체다. 이러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서,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결국 자본이 독점한 재화와 서비스 생산의 독점과 통제권을 시민들이 행사한다는 것이며, 정부는 이러한 과정을 집행하는 민주적 매개 역할을 해야 한다. 기후위기를 넘어설 간단하고 쉬운 방법, 대단한 과학기술은 없다. 기후위기 시대, 존엄한 삶의 권리주체로서 '우리'가 자본에 맞서 사회와 자연을 새롭게 조직해나가야 한다.
김종연 기자
국회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법안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미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출범했고 한국정부는 당장 11월 유엔기후변화총회에 이전보다 강화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들고 가야 하는 상황임에도 이를 뒷받침할 법률안 논의를 이제야 국회에서 시작한 것이다. 현재까지 7건의 관련 법안들이 발의되었고, 정부는 이를 종합한 '탄소중립 녹색성장법'(가칭)을 제시한 상태다. 국제사회의 압력에 밀려 허겁지겁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제시해야 하는 상황에서, 법안은 졸속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법안 통과 여부를 넘어 법안을 둘러싸고 등장한 쟁점들을 통해, 앞으로 긴 싸움이 될 기후운동의 원칙과 방향을 벼리는 일이 중요한 시점이다.
탄소중립 녹색성장법을 둘러싼 쟁점들
기후위기의 원인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지목되고, 해결책으로 감축과 배출제로, 탄소중립 등이 제시된다. 그래서 언제까지 얼마나 줄일 것인지, 국가별로 이를 약속하는 게 유엔기후체제이다. 이렇듯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는 기후위기 대응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다. 현재 논의되는 법안에서 불거지는 주요 쟁점도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얼마로 정할 것인지, 목표치를 법안에 명시할 것인지다. 정부가 기존 감축 목표를 상향하겠다고 국제사회에 공언한 상황에서, 여당은 이를 법안보다는 시행령에 담으려고 한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지구 온도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을 요구해왔으며, 최소한 2010년 대비 50% 이상 감축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또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시행령에 명시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전혀 지키지 않았던 선례를 들며, 법안 명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감축 목표치만큼이나 중요한 게 어떻게 감축할 것인지이다. 아무리 높은 감축치를 선언하거나 명시하더라도 이를 실현할 경로가 부재하다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법안을 둘러싼 두 번째 쟁점이 등장한다. 녹색성장이다. 온실가스 배출의 대부분을 차지해온 산업과 자본의 탈탄소 전환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녹색성장전략은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공유하는 바이다. 탈탄소 전환 '유도'는 재화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자본의 통제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진다. 침해는커녕 전폭적인 지원이 이루어진다. 그동안 시장이 계산하지 않았던 생태적 비용을 가격으로 환산해서 반영하겠다는 '탄소 가격제' 아이디어는 탄소배출권 거래제로 시행되었지만, 배출권을 과도하게 할당하면서 온실가스 최대 배출기업인 포스코에게 수백억 원의 이익을 안겨주었다. 그린뉴딜과 같은 녹색산업 육성책은 정부 재정을 통한 각종 보조금 지급, 기반시설 구축, 세제혜택 등을 망라한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게 아니라, 대기 중으로 퍼지지 않게 포집하여 저장하겠다는 탄소포집저장기술과 같은 불확실하고 위험한 기술도 녹색 시장을 창출하고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중요한 녹색 기술이 된다. 현재 논의되는 법안에서도 이러한 녹색 기술 개발과 사업화에 대한 조항이 상당한 비중으로 포함되어 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만큼이나 실현경로가 중요하다
기업과 자본의 주도권을 보장하는 이러한 시장기반 해법은 유럽과 미국, 중국 등에서 녹색 경제의 규모를 키우는데는 성공했지만,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줄이는데는 실패했다. 지구적 상품생산 시스템에서는 탄소배출조차 외주화가 가능한 것이다. '자본'은 끊임없이 자신을 불리기 때문에 자본이다. 이는 경제성장에 대한 '집착'이나, 탐욕스러운 '이윤추구'와 같은 윤리적 태도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과 자연을 자본주의라는 고유의 방식으로 착취하고 수탈해 부를 축적해야만 살아남는 이 체제의 구조가 만들어낸 문제다. 화석연료는 시장 논리로 대체되거나 폐기되지 않는다. 이윤을 쌓을 수만 있다면 녹색산업이든 회색산업이든 가리지 않는다. 그렇게 경제가 성장하면 모두가 행복하다는 게 자본주의다.
자본은 이제 국가를 넘어 지구적 차원에서 함께 만들어낸 사회적 부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통제권은 오로지 자본 소유자에게 귀속된다. 1.5도 목표에 부합하는 온실가스 대폭 감축 더 나아가 배출제로를 위해서는 사회적 필요에 기반한 재화 생산과 소비 계획, 산업전환과 대체기술개발에 따른 비용 부담이 기업과 자본을 포함한 전 사회적인 차원에서 논의되고 결정되어야 하지만 철옹성 같은 자본 소유권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정부가 이러한 변화를 시도할 의지조차 없고 기존 사회 시스템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만 강조될 때, 해법은 자연스럽게 녹색 시장 육성과 거대 자본이기도 한 핵에너지 활용, 녹색 기술 개발과 시장 선점 중심으로 짜이게 된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는 '탄소중립 녹색성장법'을 둘러싼 지형이 정확히 이러하다.
시장 논리를 넘어,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개입으로
사실 기후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본과 기업이 바뀌지 않고서는 기후위기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녹색금융, 녹색기업, 녹색시장을 활성화하려는 시도에 기대를 걸기도 하고, 쉽게 접근 가능한 소비자 운동에 동참하기도 한다. 자본과 기업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에서다. 한편 자본과 기업에 기후위기의 책임을 묻기 위한 노력은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와 손실에 대한 보상책임을 법률에 명시하자는 주장으로도 등장한다. 모두 자본에 대한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일 테지만 시장 논리에 따른 개입과 영향력 행사, 피해보상 프레임은 도리어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소비자 권리, 자본 소유권에 기반한 권리 주장은 마찬가지 이유로 '사회적 부'에 대한 자본 소유주의 독점권을 막지 못한다. 기후위기의 책임을 비용으로 계산하고 청구할 수 있다는 구상은 반대로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면 기후위기 유발행위를 지속할 수 있다는 논리로도 이어진다.
그럼에도 자본과 기업에 기후위기의 책임을 묻기 위한 운동은 더욱 필요하다. 문제는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 구체적을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변화로 이어져야 하는지다. 국제사회에서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시장기반 기후변화 대응 해법은 사실상 실패했다. 녹색 시장은 성장했지만 온실가스 배출은 줄이지 못했다. 재화와 서비스 생산을 조직하는 권한을 독점한 자본이 개별 기업 차원에서 스스로 온실가스 감축과 배출제로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재화 생산과 유통에 사회가 직접 개입해야 한다. 현재 정부에 의한 시장 규제들이 주로 사후적으로 결과에 따른 책임을 묻는 방식이라면, 기후대응은 사전적 조치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사실상 생산과 유통, 소비에 대한 사회적 개입과 통제권의 확대를 의미한다.
기후운동은 삶의 위기에 맞서는 시민들의 역량과 힘을 이런 방향으로 조직하고 쌓아가야 한다. 농민들은 지속가능한 대안농업으로서 먹거리 생산과 유통, 소비를 새롭게 조직하자는 '푸드플랜' 운동을 이미 시작해왔다. 최근 금속 산업 노동자들은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한 공동결정법'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실질적인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개입으로까지 이어지기에는 쉽지 않은 과정일 테지만, 기후위기의 책임을 자본에 묻는다는 것은 이렇듯, 기후위기의 원인인 시장과 자본에 생산을 조직하고 계획할 권한을 사회에 양도하라는 권력 관계의 변화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기후위기의 '구조적 책임'을 겨냥하는 인권기반 접근
정부가 제시한 '탄소중립 녹색성장법'에서 규정하는 '기후정의'는 기후위기의 책임을 자본과 정부에게 지우지 않을뿐더러, 시민들을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로 규정하지도 않는다. '사회계층별 책임이 다름을 인정'하고 '이행부담을 공정하게 나누어 평등을 보장'하는 것을 기후정의라고 규정하고 있다. 현행 재산세, 소득세 부과 원칙과 다르지 않은 것을 기후정의라고 하는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도 마찬가지다. '이행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과 산업 노동자를 보호'하여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이라고 규정한다. 이미 피해는 전제되어 있다.
인권운동은 '모든 사람'을 보편적 인권의 '권리주체'로 규정하고 주로 '국가'를 인권보장의 '의무주체'로 규정해왔다. 그런데 이러한 개념틀이 기후위기에 적용되자 시민들은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인권침해'를 증명해야 권리주체 또는 취약계층이 되고, '의무주체'로 정부 외에 자본을 드러내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특히 권리가 생계권, 주거권과 같은 목록화된 권리에 대한 침해와 피해를 지칭하게 되고, 정부와 자본이 이를 보장하는 방식이 사후적 '피해보상'이 되는 구조에서는 기후위기를 야기한 구조적 권력 관계의 변화를 꾀하기는 어려워진다.
'권리주체'와 '의무/책임주체'를 규정하는 인권 개념은 오히려 기후위기의 '구조적 책임'을 겨냥할 때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인권의 관점에서 '자본'은 기후위기와 온실가스 배출의 '책임'을 져야 하는 대상이며 '시민'은 기후위기 시대를 평등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를 지닌 주체다. 이러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서,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결국 자본이 독점한 재화와 서비스 생산의 독점과 통제권을 시민들이 행사한다는 것이며, 정부는 이러한 과정을 집행하는 민주적 매개 역할을 해야 한다. 기후위기를 넘어설 간단하고 쉬운 방법, 대단한 과학기술은 없다. 기후위기 시대, 존엄한 삶의 권리주체로서 '우리'가 자본에 맞서 사회와 자연을 새롭게 조직해나가야 한다.
김종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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