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벽돌? 1만 2000벌의 옷으로 만든 집.
20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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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팀장
20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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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옷을 압축해 만든 건축자재 '플러스넬'... 일상 속 다양한 곳에 활용.
▲ 6평 남짓한 모델하우스의 깔끔한 외관.
▲ 헌 옷으로 만든 플러스넬, 다양한 색깔로 제작이 가능하다.
일 년에 옷을 몇 번 사는가? 사놓고 안 입는 옷은 얼마나 되는가? 오늘 산 옷도 1년이 지나면 유행에 뒤처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 다반사다. 현재 패션 업계는 '패스트패션'을 중심으로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주문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처럼, 의류도 빠르게 제작되어 빠르게 유통되고 있다.
이렇게 지구에서 한 해 만들어지는 옷은 1000억 벌. 그 가운데 약 330억 벌이 같은 해에 버려진다. 통상 우리에게 '옷을 버리는' 행위는 헌옷수거함 앞에서 끝나지만 사실 헌 옷 처리는 버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버려진 옷은 땅에 묻힌다. 폐섬유가 자연적으로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문제는 썩지 않는 섬유가 있다는 것이다. 패스트패션에 사용되는 폴리에스테르와 합성섬유는 시간이 흘러도 썩지 않아 토양을 오염시킨다.
최근 버려진 옷을 새로운 상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이 많아지고 있다. 해녀복이나 웨딩드레스를 가방으로 만들거나 한복 자투리 천으로 예술작품을 만들어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그런데 옷으로 집을 만들었다는 곳이 있다. 스케일이 엄청나다는 감탄과 함께 그것이 진짜 가능한 일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지난 3일 옷으로 만든 집을 만나러 충청북도 진천으로 떠났다.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델하우스.
충북 혁신도시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로 10분을 달려 옷으로 만든 집과 마주했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아 모델하우스로 불리는 이 집은 풀숲과 이어지는 자갈이 많은 땅에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다.
가장 먼저 강렬한 외관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직사각형 몸통에 가파른 경사로 떨어지는 지붕은 마치 <헨젤과 그레텔>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다. 바깥 기온이 섭씨 36도를 넘긴 오후 1시, 짙은 회색 집의 문을 열면 푹 찌는 열기가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다행히 첫발을 내디딘 집은 온도가 높지 않았다. 들어가자마자 왼쪽에 있는 통창을 열었는데 바람도 곧잘 들어왔다. 모델하우스를 관리하는 세진플러스 직원이 견학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소파에 앉아 본격적으로 내부를 둘러보았다. 전시용 모델하우스지만, 실제 사람이 거주하는 듯했다. 집은 6평 남짓으로 작은 공간이지만 복층 구조로 공간 활용이 알차다.
1층엔 거실, 부엌, 화장실이 있다. 연회색과 베이지색 빛깔의 벽면과 노르스름한 조명이 어우러져 아늑함이 느껴진다. 옆쪽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면 침실을 마주한다. 계단 난간이 없어 벽에 설치된 손잡이를 잡고 올라갔다. 침실은 가파르게 지은 지붕 덕분에 더욱 특별하다. 침대에 누우면 천창으로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
벽을 옷으로 만들었다면 촉감이 부드러울 것 같았다. 막상 벽을 만져보니 거친 재질이었다. 푹신하지도 않았다. 주먹으로 벽을 두들겼는데 둔탁한 소리에서부터 단단함이 느껴졌다.
모델하우스를 만든 1만 2000벌의 옷은 이 벽에 숨어있다. 바로 플러스넬, 헌 옷을 압축해서 만든 건축 자재다. 플러스넬은 높은 내구성이 특징이다. 기존 목재 패널과 달리 충격을 덜 받고 불에 강하면서 수분에 영향을 덜 받는다.
업사이클링 제품인 만큼 환경표지 인증도 받았다. 한마디로 옷으로 만든 친환경 벽돌인 셈이다. 일상 속에서도 플러스넬을 찾아볼 수 있다. 청계천 벤치, 스타벅스 카페의 천장 인테리어 등 다양한 곳에 활용되고 있다.
장애인의 사회 경제적 자립을 도와주는 기업.
"둘째 딸 세진이가 발달장애 1급입니다. 세진이와 같은 친구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어요. 세진이가 없었다면, 이 회사도, 플러스넬도 만들 수 없었을 겁니다."
2010년 박준영(58) 대표는 장애인의 사회 경제적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업 '세진플러스'를 세웠다. 세진플러스는 세진이와 같은 장애인들이 직업을 찾아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사회를 꿈꾼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장님, 8월 셋째 주 토요일, 절대 약속 잡지 마세요!' 퇴사한 직원이 보낸 문자였어요. 발달장애인 친구였죠. 다짜고짜 약속을 잡지 말라더니 잊을만하면 연락이 왔어요. 약속 장소에 가니까 공연 무대가 있더라고요. 곧 그 친구가 나오더니 드럼을 치는 거예요. '아빠와 크레파스'를 연주하는 걸 보는데 뭉클했어요"
무대가 끝나고 연주회 담당자가 찾아왔다. 보여줄 사람이 있다고 매일 같이 드럼을 연습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두 사람이 어떤 사이냐고 물었다. "잠깐 같이 일했던 직원이에요, 전 사장이었고요." 박 대표는 이 말을 하면서 가슴이 뛰었다고 말했다.
"날 이렇게나 생각해주는구나,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장애에 구애받지 않고, 적성과 성향에 맞는 일을 찾아주자고 다짐했어요. 일에 사람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일을 맞추는 거죠"
그러나 봉제업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봉제업은 하향 산업이고 봉제업에 종사하려면 혼자 여러 가지 기술을 익혀야 했다.
"한 가지를 집중력 있게 하는 장애인에게 봉제업을 가르치는 건 힘든 일이었어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폐기물이 보여준 가능성.
박 대표는 40년 넘게 봉제업에 종사한 베테랑이다. 평소 모든 일을 섬유에 비유한다는 그는 플러스넬에 대한 아이디어를 관에서 얻었다고 말했다.
"과거엔 삼베로 감싼 시체와 생전에 입던 옷을 관에 넣곤 했거든요. 옷은 공기가 없으면 안 썩어요. 이 원리를 폐섬유에 적용해봤습니다. 공기가 통하지 않게 압축한다면 썩지 않는 건축 자재가 될 거라고 예상했죠."
박 대표는 폐기물 재활용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 좋겠다고 말했다.
"폐플라스틱, 폐현수막… '폐'로 시작하는 아이템으로 사업을 한다고 하면 반응이 다 똑같아요. 더러운 걸 왜 하려고 하냐는 식이죠. 하지만 더럽다고 방치할 문제는 아니잖아요. 환경오염은 현실이에요. 저는 이 현실과 마주하기로 한 것이고요."
플러스넬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 현재는 산업용으로만 활용되고 있지만, 모델하우스를 통해 개인, 가정용으로도 사용될 가능성을 보여줬다. 플러스넬의 등장은 단순히 환경오염을 해결할 수 있는 친환경 소재의 탄생을 알린 것이 아니다.
40년 이상 섬유만 파고든, 박 대표 인생의 압축이기도 하다. 오랜 연구 끝에 그가 만든 플러스넬은 장애인, 비장애인 그리고 옷, 이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집, 즉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벽이 아니었을까.
"옷은 사람을 감싸서 보호하는 역할을 하죠. 우리는 이런 옷들을 아무렇지 않게 버리지만 옷은 절대 사람을 배신하지 않아요. 헌 옷이 집이 되어 다시 우리를 찾아오는 것처럼요."
유해운 기자.
▲ 6평 남짓한 모델하우스의 깔끔한 외관.
▲ 헌 옷으로 만든 플러스넬, 다양한 색깔로 제작이 가능하다.
일 년에 옷을 몇 번 사는가? 사놓고 안 입는 옷은 얼마나 되는가? 오늘 산 옷도 1년이 지나면 유행에 뒤처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 다반사다. 현재 패션 업계는 '패스트패션'을 중심으로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주문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처럼, 의류도 빠르게 제작되어 빠르게 유통되고 있다.
이렇게 지구에서 한 해 만들어지는 옷은 1000억 벌. 그 가운데 약 330억 벌이 같은 해에 버려진다. 통상 우리에게 '옷을 버리는' 행위는 헌옷수거함 앞에서 끝나지만 사실 헌 옷 처리는 버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버려진 옷은 땅에 묻힌다. 폐섬유가 자연적으로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문제는 썩지 않는 섬유가 있다는 것이다. 패스트패션에 사용되는 폴리에스테르와 합성섬유는 시간이 흘러도 썩지 않아 토양을 오염시킨다.
최근 버려진 옷을 새로운 상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이 많아지고 있다. 해녀복이나 웨딩드레스를 가방으로 만들거나 한복 자투리 천으로 예술작품을 만들어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그런데 옷으로 집을 만들었다는 곳이 있다. 스케일이 엄청나다는 감탄과 함께 그것이 진짜 가능한 일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지난 3일 옷으로 만든 집을 만나러 충청북도 진천으로 떠났다.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델하우스.
충북 혁신도시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로 10분을 달려 옷으로 만든 집과 마주했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아 모델하우스로 불리는 이 집은 풀숲과 이어지는 자갈이 많은 땅에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다.
가장 먼저 강렬한 외관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직사각형 몸통에 가파른 경사로 떨어지는 지붕은 마치 <헨젤과 그레텔>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다. 바깥 기온이 섭씨 36도를 넘긴 오후 1시, 짙은 회색 집의 문을 열면 푹 찌는 열기가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다행히 첫발을 내디딘 집은 온도가 높지 않았다. 들어가자마자 왼쪽에 있는 통창을 열었는데 바람도 곧잘 들어왔다. 모델하우스를 관리하는 세진플러스 직원이 견학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소파에 앉아 본격적으로 내부를 둘러보았다. 전시용 모델하우스지만, 실제 사람이 거주하는 듯했다. 집은 6평 남짓으로 작은 공간이지만 복층 구조로 공간 활용이 알차다.
1층엔 거실, 부엌, 화장실이 있다. 연회색과 베이지색 빛깔의 벽면과 노르스름한 조명이 어우러져 아늑함이 느껴진다. 옆쪽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면 침실을 마주한다. 계단 난간이 없어 벽에 설치된 손잡이를 잡고 올라갔다. 침실은 가파르게 지은 지붕 덕분에 더욱 특별하다. 침대에 누우면 천창으로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
벽을 옷으로 만들었다면 촉감이 부드러울 것 같았다. 막상 벽을 만져보니 거친 재질이었다. 푹신하지도 않았다. 주먹으로 벽을 두들겼는데 둔탁한 소리에서부터 단단함이 느껴졌다.
모델하우스를 만든 1만 2000벌의 옷은 이 벽에 숨어있다. 바로 플러스넬, 헌 옷을 압축해서 만든 건축 자재다. 플러스넬은 높은 내구성이 특징이다. 기존 목재 패널과 달리 충격을 덜 받고 불에 강하면서 수분에 영향을 덜 받는다.
업사이클링 제품인 만큼 환경표지 인증도 받았다. 한마디로 옷으로 만든 친환경 벽돌인 셈이다. 일상 속에서도 플러스넬을 찾아볼 수 있다. 청계천 벤치, 스타벅스 카페의 천장 인테리어 등 다양한 곳에 활용되고 있다.
장애인의 사회 경제적 자립을 도와주는 기업.
"둘째 딸 세진이가 발달장애 1급입니다. 세진이와 같은 친구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어요. 세진이가 없었다면, 이 회사도, 플러스넬도 만들 수 없었을 겁니다."
2010년 박준영(58) 대표는 장애인의 사회 경제적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업 '세진플러스'를 세웠다. 세진플러스는 세진이와 같은 장애인들이 직업을 찾아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사회를 꿈꾼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장님, 8월 셋째 주 토요일, 절대 약속 잡지 마세요!' 퇴사한 직원이 보낸 문자였어요. 발달장애인 친구였죠. 다짜고짜 약속을 잡지 말라더니 잊을만하면 연락이 왔어요. 약속 장소에 가니까 공연 무대가 있더라고요. 곧 그 친구가 나오더니 드럼을 치는 거예요. '아빠와 크레파스'를 연주하는 걸 보는데 뭉클했어요"
무대가 끝나고 연주회 담당자가 찾아왔다. 보여줄 사람이 있다고 매일 같이 드럼을 연습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두 사람이 어떤 사이냐고 물었다. "잠깐 같이 일했던 직원이에요, 전 사장이었고요." 박 대표는 이 말을 하면서 가슴이 뛰었다고 말했다.
"날 이렇게나 생각해주는구나,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장애에 구애받지 않고, 적성과 성향에 맞는 일을 찾아주자고 다짐했어요. 일에 사람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일을 맞추는 거죠"
그러나 봉제업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봉제업은 하향 산업이고 봉제업에 종사하려면 혼자 여러 가지 기술을 익혀야 했다.
"한 가지를 집중력 있게 하는 장애인에게 봉제업을 가르치는 건 힘든 일이었어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폐기물이 보여준 가능성.
박 대표는 40년 넘게 봉제업에 종사한 베테랑이다. 평소 모든 일을 섬유에 비유한다는 그는 플러스넬에 대한 아이디어를 관에서 얻었다고 말했다.
"과거엔 삼베로 감싼 시체와 생전에 입던 옷을 관에 넣곤 했거든요. 옷은 공기가 없으면 안 썩어요. 이 원리를 폐섬유에 적용해봤습니다. 공기가 통하지 않게 압축한다면 썩지 않는 건축 자재가 될 거라고 예상했죠."
박 대표는 폐기물 재활용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 좋겠다고 말했다.
"폐플라스틱, 폐현수막… '폐'로 시작하는 아이템으로 사업을 한다고 하면 반응이 다 똑같아요. 더러운 걸 왜 하려고 하냐는 식이죠. 하지만 더럽다고 방치할 문제는 아니잖아요. 환경오염은 현실이에요. 저는 이 현실과 마주하기로 한 것이고요."
플러스넬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 현재는 산업용으로만 활용되고 있지만, 모델하우스를 통해 개인, 가정용으로도 사용될 가능성을 보여줬다. 플러스넬의 등장은 단순히 환경오염을 해결할 수 있는 친환경 소재의 탄생을 알린 것이 아니다.
40년 이상 섬유만 파고든, 박 대표 인생의 압축이기도 하다. 오랜 연구 끝에 그가 만든 플러스넬은 장애인, 비장애인 그리고 옷, 이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집, 즉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벽이 아니었을까.
"옷은 사람을 감싸서 보호하는 역할을 하죠. 우리는 이런 옷들을 아무렇지 않게 버리지만 옷은 절대 사람을 배신하지 않아요. 헌 옷이 집이 되어 다시 우리를 찾아오는 것처럼요."
유해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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