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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전염병 핑계로 벌어진 끔찍한 일... 산림청은 왜?

20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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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공기 이동조차 막아야 할 훈증포가 찢어지고, 구멍 뚫리고, 벗겨져 있고, 독성 강한 약제까지 노출되어 있다. 재선충을 확산시키고 주변 생태계를 망가트리고 있는 현장이다.

▲ 재선충 방제지침에 따르면 크기 2cm의 나무가지까지 다 처리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벌목 현장 사방에 소나무 기둥들이 방치되어 있다.



개발하고도 못 쓰는 재선충 백신... 소나무 싹쓸이 벌목의 진실.

마치 꽃이 핀 듯, 화사한 항구가 쌍으로 펼쳐져 있는 곳. 유럽의 어느 해변이 아니다. 수많은 섬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한려해상국립공원 중 거제시의 '화도'라는 작은 섬.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일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곳이다.

그러나 배를 타고 섬에 들어서자, 그림같이 아름답던 항구의 모습과 달리 숲의 소나무들은 시뻘겋게 말라죽고 있었다. 한번 감염되면 치료약이 없어 100% 죽는다는 소나무재선충 때문이었다.

그동안 산림청은 국내 산림의 나무들은 경제적 가치가 낮다며 경제림으로 수종을 갱신한다는 이유로 싹쓸이 벌목을 해왔다. 전국에서 벌어지는 벌목의 또 다른 이유는 소나무재선충 예방이다. 이로 인해 많은 예산을 쓰고, 많은 나무들이 잘려 나간다.

소나무재선충을 예방한다며 진행되는 벌목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봤다.

싹쓸이 벌목의 핑계가 되고 있는 소나무재선충

거제도의 또 다른 숲. 싹쓸이 벌목으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울창하던 나무들이 사라졌다. 잘려나간 소나무를 살펴보았다. 어른이 두 팔로 다 감싸 안을 수 없는 거대한 소나무였다.

왜 이렇게 큰 나무들이 벌목의 대상이 된 것일까. 거제시청 산림과에 이유를 물었다. 소나무재선충이 20% 정도 확산되어 벌목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재선충 감염 나무는 10%도 안 되는 듯했다.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지침에 따르면, 재선충에 감염되어 고사한 나무가 전체 나무 대비 30% 이상이어야 모두베기를 할 수 있다. 또 재선충 감염이 심각해 모두베기를 하더라도 소나무만 벌목해야 한다. 그러나 재선충과 상관없는 아름드리 활엽수까지 불법으로 벌목해 한려해상국립공원을 초토화시켰다.

불법적인 벌목이 이뤄진 곳은 거제도에 있는 석유공사 비축기지의 숲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거제시는 지난 4월 재선충 벌목 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총 150ha 중 약 5%(9.5ha)에 대한 벌목이 진행된 상태에서 벌목을 중단시켰다. 소나무재선충을 옮기는 솔수염하늘소가 고사목 내에 알·유충·번데기로 존재하는 10월-다음 해 3월까지만 소나무를 벌목하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제시청 담당자는 10월 중순에 벌목이 다시 진행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비록 기업 소유의 산림일지라도, 국립공원 안의 벌목은 국립공원관리공단과 협의해야 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난 6월, 산림 소유주인 석유공사와 불법 벌목을 주도한 신영이앤피를 자연공원법 위반행위로 거제경찰서에 고발했다.

소나무재선충 확산 방지를 위해 벌목을 할 경우, 재선충에 걸린 나무를 조사하여 실시설계도를 작성해야 한다. 그러나 정보공개 청구 결과, 거제시엔 재선충 감염목에 대한 설계도가 '정보 부존재'였다. 산림청이 거제시청에 확인한 결과 역시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 조사 서류는 없었다.

거제도의 석유기지 벌목 현장을 7월 19일과 24일 두 차례 정밀 조사해보니, 소나무재선충 예방을 위한 벌목이 아니었다. 재선충은 싹쓸이 벌목을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지침에 따르면, 재선충 감염 나무를 훈증할 경우 피복제를 덮어 공기 이동까지도 완전히 차단해야 한다. 그러나 피복제가 찢겨지거나 벗겨진 채 독성 강한 훈증 약제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또, 재선충 감염 확산을 방지하려면 벌목된 소나무 기둥들은 물론 크기 2cm 이상의 나뭇가지들까지 모두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현장엔 땅에 파묻히거나 계곡에 굴러다니는 소나무들로 가득했다. 재선충을 예방한다며 싹쓸이 벌목했지만, 오히려 재선충을 사방으로 확산시키는 꼴이었다.

이곳에서 잘려나간 나무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무가 사라진 곳을 찾아내면 왜 엉터리 벌목을 했는지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제 석유기지 벌목 현장에서 1시간여 달려 경남 고성에 도착했다. '신영포르투'라는 공장 마당 곳곳에 벌목해온 나무들이 가득했다. 벌목해온 나무를 분쇄해 톱밥을 만들고 있었다.

톱밥더미들이 거대한 산을 이뤘다. 산 같이 쌓아올린 톱밥더미 사이사이에 톱밥 썩은 물이 출렁였다. 일부는 심지어 바다로 흘러들고 있었다.

신영포르투는 모회사인 신영이앤피로부터 벌목 나무를 공급받아 화력발전소 납품용 펠릿을 만드는 공장이다. 재선충을 핑계로 국립공원의 아름드리나무들을 벌목하여 화력발전소 납품용 펠릿을 만들다니 기가 막혔다.

거제도의 또 다른 벌목 현장도 재선충을 이유로 벌목했다. 소나무만 베어야 한다는 법규를 무시하고 활엽수까지 마구잡이로 벌목하다가 지난 2020년 12월 20일 통영거제환경연합의 신고로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현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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