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거짓말에 쫄딱 망했다” 극단선택 예고한 규제 샌드박스 1호 대표
2021.07
28
뉴스관리팀장
19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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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한 국시집에서 장민우 뉴코애드윈드 대표와 점심을 먹으면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식사 중에 둘이 소주 3병을 비웠다.
[최원우의 아무튼 인터뷰]
가난했지만, 마음씨 따뜻했던 장민우 대표
국제발명대회 수상 휩쓸며 규제샌드박스1 호 선정됐지만
”규제 못 풀어준다” 한마디에 150억 날리고 파산 위기.
“공무원들 거짓말에 속아 전재산을 날렸습니다. 7월31일 세종 정부청사 앞에서 분신자살할 예정입니다.”
이달 중순 한 스타트업 관계자가 “이런 문자가 찌라시로 돌고 있다”며 보여줬다. 스스로 ‘규제샌드박스 때문에 인생 망친 기업인’이라고 소개한 작성자는 “저 한 사람 죽어서 더 이상 힘없고 약한 기업인들이 보여주기식 규제샌드박스 놀이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규제샌드박스는 의미 있는 사업이 규제에 막혀 있다면, 일정 기간 검증을 거쳐 규제를 풀어주고 사업을 지원한다는 정부 정책이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길래 목숨까지 걸겠다는 건가 싶었다. 본인 실명과 연락처까지 공개한 걸 보니 단순한 허세 같지는 않았다. 속는 셈치고 문자 하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봤다.
장민우 뉴코애드윈드 대표가 전화를 받았다. 물어보니 본인이 작성한 문자가 맞다고 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기자 연락에 당황할 법도 했지만, 그는 오히려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고 했다. 광주에 있다던 그는 “마침 서울에 올라갈 일정이 있으니 만나서 자세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통화 내내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마음이 많이 힘든 상태일 것 같았다. “술은 좀 하시느냐. 제가 한잔 사겠다”고 했더니 그는 “그렇게 하시지요”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가 2019년 정부 규제샌드박스 1호 안건으로 선정됐던 유망한 스타트업 대표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언론 관심을 끌려는 이상한 사람은 아닌 듯했다.
‘규제 샌드박스 1호’ 기업 대표에서 빚더미 앉은 신용불량자로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한 전골국수 식당에서 그를 만나기로 했다. 원래 점심때면 가게가 꽉 차 줄을 서던 곳인데, 코로나 때문에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엔 좋은 분위기였다. 장 대표는 약속시간보다 20분쯤 늦게 도착했다. 10분쯤 기다려도 연락이 없기에 전화를 했더니 “차 안에서 깜빡 졸았다. 미안하다”고 했다. 처음 만난 그는 어딘지 넋이 나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문자 얘기부터 시작했다. 이미 업계에 분신자살을 선언했다는 소문이 났는데도, 크게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장 대표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 단톡방에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올렸던 게 돌고 도는 것 같다”고 했다. 코스포는 1600여개 스타트업들을 회원사로 둔 단체다. 그는 “문자 내용은 전부 진심이다. 지금 상황으로는 이달 말 정부에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 허가서를 반납하고, 문자에 적은 대로 실행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한참을 얼마나 억울한지 토로했다. 장 대표는 “바보같이 정부를 믿은 내 잘못이다. 그저 좋은 사업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정부에 놀아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국민 생명과 안전에 위험하지만 않으면 적극적으로 규제를 풀어주라고 했었다. 소극 행정하면 문책한다고도 했었다. 말은 참 멋들어졌는데, 말뿐이었다. 결국 규제 때문에 사업도 못하고 망하게 생겼다”고 했다.
그의 사연은 이미 언론에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그는 오토바이 등 이륜차 배달통에 LCD디스플레이와 초고속 무선통신망을 장착, 실시간으로 디지털 광고 영상을 송출해주는 광고판을 개발해 2017년 5월 회사를 설립했다.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국제발명전에서 잇따라 수상했고, 유명 IT매체에서 아시아 100대 혁신 유망기업에도 선정됐다. 하지만 국내에선 교통수단에 조명을 사용하는 광고물을 부착하지 못하게 하는 옥외광고법 등 규제에 막혀 사업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장 대표는 정부에서 사업성을 인정받아 2019년 5월 규제샌드박스 1호 안건으로 선정됐다. 보통 규제샌드박스는 실증기간 2년을 요구하지만, 장 대표는 특별히 6개월 검증만 거쳐서 규제를 완화해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았다. 하지만 2년이 넘게 지날 동안 규제의 문턱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지난 5월 장 대표는 “규제를 풀어줄 수 없다”는 관계부처의 최종 통보를 받았다. 그의 사업은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 “가난하게 살았기에 어렵고 힘든 사람들 돕고 싶었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순식간에 소주 3병을 비웠다. 살짝 알딸딸했지만, 얘기가 길어지면서 골뱅이집으로 2차를 갔다. 장 대표는 상당한 주당이었다. 둘이서 소주 6병을 더 마셨다. 그쯤부터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인생 이야기들이 나왔다.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장 대표는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했다. 대학 다닐 때부터 택시기사로 돈을 벌며 학업을 병행했다. 다행히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IMF가 터지면서 허무하게 구조조정 당했다. 장 대표는 “열심히 일했고, 일 잘한다는 칭찬도 들었지만 잘리는 건 한순간이었다”며 “회사원 생활에 환멸을 느껴 굶어 죽더라도 내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그때부터 6개월 정도 사실상 노숙생활을 했다. 정처 없이 떠돌다 농사를 도와주고 밥을 얻어먹거나, 교회나 절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그마저 여의치 않을 때는 그냥 산이나 들 한복판에서 잠을 청했다. 장 대표는 “그렇게 세상 떠돌다 보니까 냉정하게 대하는 사람도 있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도 있더라. 먹을거리를 챙겨주거나 여비를 쥐어주면서 힘내라고 위로해 주던 사람들은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언젠가 남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6개월 방황을 마치고 장 대표는 이런저런 사업에 도전했다. 수차례 시행착오 끝에 시작한 사업이 퀵서비스 배달대행이었다. 치열하게 노력한 끝에 광주 동종업계에선 규모가 제일 큰 회사로 일궈냈다. 장 대표는 당시 퀵서비스 오토바이들을 보면서 지금 사업을 구상했다고 했다. 오토바이 배달통에 든 음식이 바뀔 때마다 해당 음식점 광고 영상으로 바뀌면 어떨까. 실종자나 미아 찾는 공익 광고를 내보낼 순 없을까. 장 대표는 “배달통에 배민, 쿠팡이츠만 광고하란 법 있느냐”고 했다.
그는 사업이 잘될 때도 노숙 시절 초심을 생각한다고 했다. 인상적이었던 얘기는, 그가 직원을 채용하는 방식이다. 보통 스펙 좋고, 일 잘할 것 같은 사람들을 채용하는 게 정상이다. 장 대표는 반대로 침울해 보이거나 아픈 과거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보통 그런 사람들이 왕따를 당했거나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 우리가 안 뽑아 주면 갈 데가 없을까 봐, 혹시나 우리가 마지막 희망일까 봐 채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효율적이지 못한 인사 방식일 수도 있지만, 왠지 인간미가 느껴졌다. 그의 회사 홈페이지에는 “가장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기업이 되겠다”고 적혀 있다.
◇ “규제 조금만 완화해줘도 좋은 사업 될 텐데...”
장 대표는 규제샌드박스 문제로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하게 된 우여곡절을 상세히 털어놨다. 그는 “광주 지역에서만 오토바이 최대 100대까지만 운영해 보라는 정부 조건으로는 도저히 사업을 운영할 수 없었다”고 했다. 광고판을 대량 생산하려면 설비 투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고작 100대만 생산해서는 도무지 수지가 맞지 않았다. 장 대표는 17대를 직접 제작해 운영했지만, 광고 효과가 미미해 광고주를 구하기 어려웠다.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투자자들은 여럿 있었지만, 규제 리스크가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선뜻 투자에 나서지 않았다.
장 대표는 “그래도 6개월만 버티면 규제를 풀어줄 거라던 공무원들 약속을 믿었다”고 했다. 그는 규제를 피해 베트남에서 사업하는 방안도 고민했지만, 담당 공무원들이 때로는 회유하고, 때로는 협박하면서 그를 붙잡았다고 했다. 결국 별다른 매출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을 강행했다. 제품 개발비만 30억원가량 들었고, 생산설비를 갖추는데도 50억원 정도가 들어갔다. 해외 투자자를 찾으려 해외 전시도 20회 넘게 참여했다. 한번 참여할 때마다 2000만~3000만원씩 들었지만, 코로나 문제로 투자가 번번이 불발됐다. 그 사이 6개월이 아니라 2년이 넘게 흘렀지만, 규제는 풀리지 않고 적자만 불어났다.
장 대표는 “사업 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적용 대수 제한을 풀어주면 충분히 좋은 사업이 될 수 있는데,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그냥 안 된다고만 하니 답답해 미칠 노릇”이라며 “저는 힘이 없어서 규제에 막혔지만, 힘 있는 대기업이 제가 하려던 사업을 그대로 가져갈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만취한 그는 “규제샌드박스는 신사업 살리는 모래밭이 아니라 중소기업 잡아먹는 개미지옥”이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인터뷰를 마친 이후 관계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담당과에 사정을 확인해 봤다. “6개월 뒤 규제 완화를 검토하겠다고 약속한 건 맞지만, 규제를 풀만큼 문제가 없다는 걸 자세하게 입증하셔야 하는데, 충분한 소명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또 “100대를 허용해 줬는데 17대만 운영한 것도 실적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여러가지로 입장 차이가 있었지만, 사정이 어려우신 만큼 해결책이 있는지 논의해 보고 있다”고 했다. 장 대표가 보여준 정부 검토서에 규제를 풀어 줄 수 없다고 밝힌 이유가 명시돼 있다. 핵심 이유는 “사업성이나 투자 유치를 이유로 규제를 완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장 대표는 “검증 기간에 아무런 사고가 나지 않았고, 이미 해외에 비슷한 서비스가 문제없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했다. 장 대표 문제로 대응에 나선 코스포 관계자는 “규제가 풀린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한 장 대표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은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샌드박스 참여 기업들이 사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길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지금 상태로는 이런 문제가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른 스타트업 관계자는 “정부는 기존 규제의 타당성이나 사업의 성장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고 원론적인 입장만 늘어놓는다”며 “공무원들이 샌드박스 참여 업체를 무슨 투자 유치로 돈이나 좀 만져보려는 작자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했다.
◇ “정부 믿는 순진한 기업인들 위한 경고문 되겠다”
지금 장 대표의 회사는 파산 직전이고, 자신도 신용불량자 처지가 됐다. 그는 “150억원을 날려 먹었다. 개인 빚도 60억 정도 되는데 매달 이자로만 2000만원씩 나간다”고 했다. 그는 “오죽했으면 장모님 카드로 카드대출 받아서 직원들 월급을 줬다”고 했다. 장 대표에게도 가족이 있다. 그가 37살 노총각으로 빈민가 쪽방촌에 살던 때, 처지를 알고도 주저않고 미래를 약속해준 사람과 결혼했다. 그는 “가난을 대물림할 바에는 아예 결혼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과분하게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에게 짐이 된 것처럼 느껴져 집에 잘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의도치 않게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고 있다는 걸 아내도 알게 됐다. 그날은 둘이서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안 좋은 생각은 하시면 안 된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그는 끝까지 생각을 바꾸겠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장 대표는 “제가 생각하는 행복은 단순하다. 각자 하는 일을 열심히 해서, 다 같이 살기 좋은 사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어차피 내가 분신을 하더라도 정부가 하나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안다. ‘타다' 사태 때도 택시 기사들이 분신한다고 뭐 달라지지 않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그래도 현실 감각을 완전히 잃지는 않은 것처럼 보였다. 장 대표는 “그럼에도 이런 결심을 하고, 인터뷰에도 응한 건 다른 기업인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저처럼 순진하게 정부 말 믿었다가 인생 망치는 사람이 더는 없어야 하는 것 아니냐. 절벽 앞에 ‘추락주의’ 경고문을 붙여놨듯 제가 그 경고문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제가 신사업하겠다는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얘기는 딱 3가지입니다. 공무원 만날 때는 무조건 녹음해두세요. 몇 년 돈 못 벌어도 버틸 자본 없으면 시작할 생각도 하지 마세요. 사무관 정도는 컨트롤할 인맥 없으면 시작할 생각도 하지 마세요.”
어쨌든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31일 세종 정부청사로 가겠다고 했다. 그의 인생 얘기는 어떤지 몰라도, 규제 샌드박스와 관련한 주장은 대부분 맞는 내용이었다. 그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느낌도 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공공연히 분신자살을 말하는 그의 마음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혹시나 비극적인 일이 진짜로 일어나진 않을까 걱정이 가시질 않았다. 다행히 극단적 선택을 피한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여전히 빚더미와 상처가 남는다. 그런 그에게 “그럼에도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없었다.
채강석 기자.
[최원우의 아무튼 인터뷰]
가난했지만, 마음씨 따뜻했던 장민우 대표
국제발명대회 수상 휩쓸며 규제샌드박스1 호 선정됐지만
”규제 못 풀어준다” 한마디에 150억 날리고 파산 위기.
“공무원들 거짓말에 속아 전재산을 날렸습니다. 7월31일 세종 정부청사 앞에서 분신자살할 예정입니다.”
이달 중순 한 스타트업 관계자가 “이런 문자가 찌라시로 돌고 있다”며 보여줬다. 스스로 ‘규제샌드박스 때문에 인생 망친 기업인’이라고 소개한 작성자는 “저 한 사람 죽어서 더 이상 힘없고 약한 기업인들이 보여주기식 규제샌드박스 놀이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규제샌드박스는 의미 있는 사업이 규제에 막혀 있다면, 일정 기간 검증을 거쳐 규제를 풀어주고 사업을 지원한다는 정부 정책이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길래 목숨까지 걸겠다는 건가 싶었다. 본인 실명과 연락처까지 공개한 걸 보니 단순한 허세 같지는 않았다. 속는 셈치고 문자 하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봤다.
장민우 뉴코애드윈드 대표가 전화를 받았다. 물어보니 본인이 작성한 문자가 맞다고 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기자 연락에 당황할 법도 했지만, 그는 오히려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고 했다. 광주에 있다던 그는 “마침 서울에 올라갈 일정이 있으니 만나서 자세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통화 내내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마음이 많이 힘든 상태일 것 같았다. “술은 좀 하시느냐. 제가 한잔 사겠다”고 했더니 그는 “그렇게 하시지요”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가 2019년 정부 규제샌드박스 1호 안건으로 선정됐던 유망한 스타트업 대표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언론 관심을 끌려는 이상한 사람은 아닌 듯했다.
‘규제 샌드박스 1호’ 기업 대표에서 빚더미 앉은 신용불량자로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한 전골국수 식당에서 그를 만나기로 했다. 원래 점심때면 가게가 꽉 차 줄을 서던 곳인데, 코로나 때문에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엔 좋은 분위기였다. 장 대표는 약속시간보다 20분쯤 늦게 도착했다. 10분쯤 기다려도 연락이 없기에 전화를 했더니 “차 안에서 깜빡 졸았다. 미안하다”고 했다. 처음 만난 그는 어딘지 넋이 나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문자 얘기부터 시작했다. 이미 업계에 분신자살을 선언했다는 소문이 났는데도, 크게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장 대표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 단톡방에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올렸던 게 돌고 도는 것 같다”고 했다. 코스포는 1600여개 스타트업들을 회원사로 둔 단체다. 그는 “문자 내용은 전부 진심이다. 지금 상황으로는 이달 말 정부에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 허가서를 반납하고, 문자에 적은 대로 실행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한참을 얼마나 억울한지 토로했다. 장 대표는 “바보같이 정부를 믿은 내 잘못이다. 그저 좋은 사업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정부에 놀아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국민 생명과 안전에 위험하지만 않으면 적극적으로 규제를 풀어주라고 했었다. 소극 행정하면 문책한다고도 했었다. 말은 참 멋들어졌는데, 말뿐이었다. 결국 규제 때문에 사업도 못하고 망하게 생겼다”고 했다.
그의 사연은 이미 언론에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그는 오토바이 등 이륜차 배달통에 LCD디스플레이와 초고속 무선통신망을 장착, 실시간으로 디지털 광고 영상을 송출해주는 광고판을 개발해 2017년 5월 회사를 설립했다.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국제발명전에서 잇따라 수상했고, 유명 IT매체에서 아시아 100대 혁신 유망기업에도 선정됐다. 하지만 국내에선 교통수단에 조명을 사용하는 광고물을 부착하지 못하게 하는 옥외광고법 등 규제에 막혀 사업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장 대표는 정부에서 사업성을 인정받아 2019년 5월 규제샌드박스 1호 안건으로 선정됐다. 보통 규제샌드박스는 실증기간 2년을 요구하지만, 장 대표는 특별히 6개월 검증만 거쳐서 규제를 완화해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았다. 하지만 2년이 넘게 지날 동안 규제의 문턱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지난 5월 장 대표는 “규제를 풀어줄 수 없다”는 관계부처의 최종 통보를 받았다. 그의 사업은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 “가난하게 살았기에 어렵고 힘든 사람들 돕고 싶었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순식간에 소주 3병을 비웠다. 살짝 알딸딸했지만, 얘기가 길어지면서 골뱅이집으로 2차를 갔다. 장 대표는 상당한 주당이었다. 둘이서 소주 6병을 더 마셨다. 그쯤부터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인생 이야기들이 나왔다.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장 대표는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했다. 대학 다닐 때부터 택시기사로 돈을 벌며 학업을 병행했다. 다행히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IMF가 터지면서 허무하게 구조조정 당했다. 장 대표는 “열심히 일했고, 일 잘한다는 칭찬도 들었지만 잘리는 건 한순간이었다”며 “회사원 생활에 환멸을 느껴 굶어 죽더라도 내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그때부터 6개월 정도 사실상 노숙생활을 했다. 정처 없이 떠돌다 농사를 도와주고 밥을 얻어먹거나, 교회나 절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그마저 여의치 않을 때는 그냥 산이나 들 한복판에서 잠을 청했다. 장 대표는 “그렇게 세상 떠돌다 보니까 냉정하게 대하는 사람도 있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도 있더라. 먹을거리를 챙겨주거나 여비를 쥐어주면서 힘내라고 위로해 주던 사람들은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언젠가 남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6개월 방황을 마치고 장 대표는 이런저런 사업에 도전했다. 수차례 시행착오 끝에 시작한 사업이 퀵서비스 배달대행이었다. 치열하게 노력한 끝에 광주 동종업계에선 규모가 제일 큰 회사로 일궈냈다. 장 대표는 당시 퀵서비스 오토바이들을 보면서 지금 사업을 구상했다고 했다. 오토바이 배달통에 든 음식이 바뀔 때마다 해당 음식점 광고 영상으로 바뀌면 어떨까. 실종자나 미아 찾는 공익 광고를 내보낼 순 없을까. 장 대표는 “배달통에 배민, 쿠팡이츠만 광고하란 법 있느냐”고 했다.
그는 사업이 잘될 때도 노숙 시절 초심을 생각한다고 했다. 인상적이었던 얘기는, 그가 직원을 채용하는 방식이다. 보통 스펙 좋고, 일 잘할 것 같은 사람들을 채용하는 게 정상이다. 장 대표는 반대로 침울해 보이거나 아픈 과거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보통 그런 사람들이 왕따를 당했거나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 우리가 안 뽑아 주면 갈 데가 없을까 봐, 혹시나 우리가 마지막 희망일까 봐 채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효율적이지 못한 인사 방식일 수도 있지만, 왠지 인간미가 느껴졌다. 그의 회사 홈페이지에는 “가장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기업이 되겠다”고 적혀 있다.
◇ “규제 조금만 완화해줘도 좋은 사업 될 텐데...”
장 대표는 규제샌드박스 문제로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하게 된 우여곡절을 상세히 털어놨다. 그는 “광주 지역에서만 오토바이 최대 100대까지만 운영해 보라는 정부 조건으로는 도저히 사업을 운영할 수 없었다”고 했다. 광고판을 대량 생산하려면 설비 투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고작 100대만 생산해서는 도무지 수지가 맞지 않았다. 장 대표는 17대를 직접 제작해 운영했지만, 광고 효과가 미미해 광고주를 구하기 어려웠다.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투자자들은 여럿 있었지만, 규제 리스크가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선뜻 투자에 나서지 않았다.
장 대표는 “그래도 6개월만 버티면 규제를 풀어줄 거라던 공무원들 약속을 믿었다”고 했다. 그는 규제를 피해 베트남에서 사업하는 방안도 고민했지만, 담당 공무원들이 때로는 회유하고, 때로는 협박하면서 그를 붙잡았다고 했다. 결국 별다른 매출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을 강행했다. 제품 개발비만 30억원가량 들었고, 생산설비를 갖추는데도 50억원 정도가 들어갔다. 해외 투자자를 찾으려 해외 전시도 20회 넘게 참여했다. 한번 참여할 때마다 2000만~3000만원씩 들었지만, 코로나 문제로 투자가 번번이 불발됐다. 그 사이 6개월이 아니라 2년이 넘게 흘렀지만, 규제는 풀리지 않고 적자만 불어났다.
장 대표는 “사업 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적용 대수 제한을 풀어주면 충분히 좋은 사업이 될 수 있는데,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그냥 안 된다고만 하니 답답해 미칠 노릇”이라며 “저는 힘이 없어서 규제에 막혔지만, 힘 있는 대기업이 제가 하려던 사업을 그대로 가져갈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만취한 그는 “규제샌드박스는 신사업 살리는 모래밭이 아니라 중소기업 잡아먹는 개미지옥”이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인터뷰를 마친 이후 관계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담당과에 사정을 확인해 봤다. “6개월 뒤 규제 완화를 검토하겠다고 약속한 건 맞지만, 규제를 풀만큼 문제가 없다는 걸 자세하게 입증하셔야 하는데, 충분한 소명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또 “100대를 허용해 줬는데 17대만 운영한 것도 실적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여러가지로 입장 차이가 있었지만, 사정이 어려우신 만큼 해결책이 있는지 논의해 보고 있다”고 했다. 장 대표가 보여준 정부 검토서에 규제를 풀어 줄 수 없다고 밝힌 이유가 명시돼 있다. 핵심 이유는 “사업성이나 투자 유치를 이유로 규제를 완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장 대표는 “검증 기간에 아무런 사고가 나지 않았고, 이미 해외에 비슷한 서비스가 문제없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했다. 장 대표 문제로 대응에 나선 코스포 관계자는 “규제가 풀린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한 장 대표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은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샌드박스 참여 기업들이 사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길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지금 상태로는 이런 문제가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른 스타트업 관계자는 “정부는 기존 규제의 타당성이나 사업의 성장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고 원론적인 입장만 늘어놓는다”며 “공무원들이 샌드박스 참여 업체를 무슨 투자 유치로 돈이나 좀 만져보려는 작자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했다.
◇ “정부 믿는 순진한 기업인들 위한 경고문 되겠다”
지금 장 대표의 회사는 파산 직전이고, 자신도 신용불량자 처지가 됐다. 그는 “150억원을 날려 먹었다. 개인 빚도 60억 정도 되는데 매달 이자로만 2000만원씩 나간다”고 했다. 그는 “오죽했으면 장모님 카드로 카드대출 받아서 직원들 월급을 줬다”고 했다. 장 대표에게도 가족이 있다. 그가 37살 노총각으로 빈민가 쪽방촌에 살던 때, 처지를 알고도 주저않고 미래를 약속해준 사람과 결혼했다. 그는 “가난을 대물림할 바에는 아예 결혼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과분하게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에게 짐이 된 것처럼 느껴져 집에 잘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의도치 않게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고 있다는 걸 아내도 알게 됐다. 그날은 둘이서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안 좋은 생각은 하시면 안 된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그는 끝까지 생각을 바꾸겠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장 대표는 “제가 생각하는 행복은 단순하다. 각자 하는 일을 열심히 해서, 다 같이 살기 좋은 사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어차피 내가 분신을 하더라도 정부가 하나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안다. ‘타다' 사태 때도 택시 기사들이 분신한다고 뭐 달라지지 않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그래도 현실 감각을 완전히 잃지는 않은 것처럼 보였다. 장 대표는 “그럼에도 이런 결심을 하고, 인터뷰에도 응한 건 다른 기업인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저처럼 순진하게 정부 말 믿었다가 인생 망치는 사람이 더는 없어야 하는 것 아니냐. 절벽 앞에 ‘추락주의’ 경고문을 붙여놨듯 제가 그 경고문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제가 신사업하겠다는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얘기는 딱 3가지입니다. 공무원 만날 때는 무조건 녹음해두세요. 몇 년 돈 못 벌어도 버틸 자본 없으면 시작할 생각도 하지 마세요. 사무관 정도는 컨트롤할 인맥 없으면 시작할 생각도 하지 마세요.”
어쨌든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31일 세종 정부청사로 가겠다고 했다. 그의 인생 얘기는 어떤지 몰라도, 규제 샌드박스와 관련한 주장은 대부분 맞는 내용이었다. 그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느낌도 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공공연히 분신자살을 말하는 그의 마음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혹시나 비극적인 일이 진짜로 일어나진 않을까 걱정이 가시질 않았다. 다행히 극단적 선택을 피한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여전히 빚더미와 상처가 남는다. 그런 그에게 “그럼에도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없었다.
채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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