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장이 소환한 2020년 4월 윤석열 검찰은?
20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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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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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검찰이 범여권 인사 고발을 사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모습.
‘윤석열 검찰’ 범여권 인사·언론인 고발 사주 의혹
‘텔레그램 고발장’ 전달할 즈음 검찰엔 무슨 일이?
‘고발장’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야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재임기에 검찰이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범여권 인사 고발장을 전달했다는 의혹이 불거져나온 탓이다. 그 손준성이 그 손준성인가
의혹의 출발점은 이렇다. 2020년 4월3일 검사 출신 김웅 당시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텔레그램으로 고발장과 <조선일보> 기사 링크, 각종 자료 이미지 등이 전달됐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최강욱·황희석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언론사 기자들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내용이다. 이들이 2020년 4월 총선에서 범여권 후보들이 당선되도록 “검찰을 흠집 내는 기삿거리”로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 부인과 장모 범죄 의혹, 검-언 유착 의혹 등을 제보하거나 보도했다는 것이다.
김웅 당시 후보한테서 이 텔레그램을 전달받은 이에게는 ‘전달된 메시지-손준성 보냄’이라는 표시가 떴다. 텔레그램에서는 다른 사람의 메시지를 재전송할 때 자동으로 원래 메시지 작성자의 이름이 표시된다. 손준성은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의 이름이다. 김웅 당시 후보와 손준성 검사는 사법연수원 동기(29기) 사이다.
공익의 대표자인 검사가 정말 야당을 움직여 여당을 고발하는 ‘정치 공작’을 한 것일까. 이 고발장은 검찰이 직접 작성했을까. 이 ‘고발 사주’ 의혹이 사실이라면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은 얼마나 연루됐을까.
의혹이 점점 커지는 데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고발장 등을 전달한 이의 이름이 ‘손준성’으로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 이름과 동일하다는 점 △피고인 당사자 외에는 구하기 힘든데도 이른바 ‘채널A 검-언 유착 사건’ 제보자의 실명이 박힌 판결문을 자료로 전달했다는 점 △고발장의 서술 형식과 문체가 검찰 공소장과 비슷해 보인다는 점 등이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관여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사는 이유는, 손준성 검사의 당시 직책 때문이다.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전 범죄정보기획관)은 수사정보를 수집하며 검찰총장을 보좌하는 대검 핵심 보직이다.
의혹에 대해 당사자들은 부인하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대응한다. 손준성 검사는 2021년 9월9일 거듭 “(고발장을) 작성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고발장을 본 적 있냐’는 <한겨레> 기자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김웅 의원은 반복해서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면서도 9월8일 기자회견에서는 “정황상 제가 손아무개씨로부터 그 자료를 받아 당에 전달한 것일 수도 있다”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이날 윤 전 총장도 기자회견을 열어 “(고발장은) 출처와 작성자가 없는 소위 괴문서”라고 주장했다.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한 것이다.
의혹이 불거진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진실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이제 공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대검으로 넘어갔다. 9월6일 공수처는 시민단체인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이 윤 전 총장, 손 검사 등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접수해 검토 중이다. 9월8일 대검 감찰부는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한 제보를 ‘공익신고’로 공식 인정한다고 밝혔다. 대검이 손 검사 등 검찰 내부 관련자에 대한 감찰에 착수하면서 동시에 강제수사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4월3일 고발장과 ‘검-언 유착’ 사건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은 검찰 관여 여부다. 2020년 4월, 검찰이 야당에 고발을 사주할 만한 배경이 있었을까. 당시 상황을 다시 세세하게 복기해봐야 하는 이유다. 2020년 1월 부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총장과 줄곧 갈등했다. 윤 전 총장의 장모, 부인 관련 범죄 의혹은 물론이고 검-언 유착 의혹까지 제기돼 윤 전 총장은 수세에 몰린 상태였다. 추 전 장관이 검-언 유착 의혹과 관련해 진상 확인과 감찰 지시를 내리는 시점과 이른바 ‘고발장’이 전달된 시점은 거의 엇비슷하다. 검-언 유착 의혹은 채널A 기자가 윤 전 총장의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과 만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비리를 캐내려 공모했다는 의혹을 말한다. 이 기자는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에게 협박성 취재를 한 혐의(강요 미수)로 기소됐으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한겨레21>은 손준성 검사가 김웅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의심되는 두 종류의 고발장 전달 시점과 내용을 중심으로 당시 검찰 안팎의 상황을 재구성해봤다. 두 종류의 고발장 하나는 2020년 4월3일 전달된 고발장(이하 ‘3일 고발장’)이고, 다른 하나는 4월8일 전달된 고발장(이하 ‘8일 고발장’)이다.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의 윤석열 징계결정문(2020년 12월16일 작성),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공소장(2020년 8월5일) 등도 함께 톺아봤다.
2020년 3월31일, 검찰 내부는 문화방송(MBC)이 저녁 7시50분 검-언 유착 보도를 내보낸 탓에 바삐 돌아갔다. ‘윤석열 징계결정문’을 보면, 이 시간 전후로 한동훈 당시 부산고검 차장검사, 권순정 대검 대변인,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은 단체대화방에서 서로 메시지 53건을 주고받았다. 다음날도 이들 사이에 45건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오갔다. 이날 한 검사장은 “기자와 폭로된 대화를 한 사실이 없다”고 입장문을 발표했다.
4월2일, 추미애 전 장관은 윤 전 총장에게 ‘진상 확인’을 지시했다. 한국방송(KBS) 라디오 프로그램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제보자X’로 불리는 지아무개씨가 출연해 채널A 기자와 말한 검찰 고위직은 윤 전 총장의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이라고 밝혔다. 지씨는 ‘고발장’과 함께 전달된 판결문에 실명으로 등장하는 이다.
4월3일 오전 10시12분, ‘손준성 보냄’이라는 표기가 달린 채 텔레그램으로 <조선일보> 기사 링크가 김웅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자를 거쳐 야당 인사로 추측되는 제보자에게 도착했다. 검-언 유착의 제보자인 지씨가 범여권 관계자와 연루됐다는 내용의 기사다. 오후 4시19분에는 최강욱 등 범여권 인사를 고발하는 고발장이 각종 증거물과 함께 전달됐다.
‘3일 고발장’을 보면, 지씨가 거짓 제보를 했고 범여권 인사와 친정부 성향 기자들이 허위 보도를 했다는 주장이 담겼다. 특히 윤 전 총장 부인과 장모, 측근을 비방해 총선에 개입하는 등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있다는 문장도 나온다. “김건희(윤 전 총장의 부인)는 불법적인 주가조작에 관여한 사실이 없었고, 한동훈 검사장은 채널A 기자를 시켜 이철에게 유시민 이사장의 비리를 진술하라고 설득한 사실이 없었고, 지○○(제보자X)은 한동훈 검사장의 음성녹음을 청취한 사실도 없었다.”
4월8일 전날 최강욱과 황희석, 김건희 고발
2020년 4월8일 전달된 두 번째 고발장에는 최강욱 열린민주당 당시 비례대표 후보자가 유튜브 방송에 나와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담겼다.
“후보자인 피고발인이 국회의원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자신의 도덕성 등에 치명타가 될 수 있는 허위 인턴증명서 작성 사실 유무에 대해 위와 같이 거짓 해명한 행위는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1항을 위반한 허위사실 공표죄에 해당하므로 피고발인을 신속히 조사하여 처벌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즈음에도 대검 안팎에선 긴박함이 흘렀다. ‘8일 고발장’이 전달되기 전날인 4월7일, 최강욱·황희석 등 당시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들은 윤 전 총장의 부인 김건희씨와 장모 최아무개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은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으면 그해 7월 출범하는 공수처가 이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시민단체인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채널A 기자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한동수 감찰본부장은 윤 전 총장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MBC 보도 관련, 진상확인 조치 검토 보고’를 했다. 감찰 개시를 알리는 보고였다. 윤 전 총장은 “감찰 활동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8일 고발장’이 오간 4월8일, 윤 전 총장은 감찰본부 대신 대검 인권부가 검-언 유착 의혹 진상조사에 착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검찰 공무원 조사 과정에서 일어난 직접적인 인권침해를 감독하는 부서인 인권부가 이 의혹을 조사하는 것은 업무 성격에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3일 고발장’은 검찰로 넘어가지 않았지만 ‘8일 고발장’(이른바 ‘최강욱 고발장’)은 미래통합당을 거쳐 대검에 접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래통합당 법률자문위원인 조아무개 변호사는 2020년 8월 미래통합당 당무감사실장에게서 ‘고발장 초안’을 받아 편집한 뒤, 8월25일 대검찰청 민원실에 고발장을 냈다고 밝혔다. 미래통합당 ‘최강욱 고발장’ 흐름도(21쪽)에서 확인되듯이 ‘4월 고발장’(이른바 ‘4월8일 고발장’)과 미래통합당의 ‘고발장 초안’, 검찰에 제출된 ‘8월 고발장’에 나오는 주요 문구와 수치는 문건 형식의 차이를 제외하면 ‘판박이’였다.
2020년 5월 중순 전후로도, 손준성 당시 수사정책관은 윤 전 총장 가족과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을 전담해 정보를 수집했던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징계결정문’에는 “저희가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수정관실(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총장님 지시에 따라서 한 달 전부터 총장님 사모님, 장모님 사건과 채널A 사건을 전담해 정보 수집을 하였다고 들었는데, 관련 법리도 그곳에서 만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당시 이정현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는 증언이 나온다.
고발장 작성자를 못 밝힌다면
그 뒤 검찰은 2020년 10월15일, 총선을 앞두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최 대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인턴 활동 확인서를 거짓으로 작성하고도 총선 때 이를 부인하는 내용을 유튜브 방송에서 유포한 혐의를 받았다. ‘8일 고발장’의 주된 내용이 검찰 기소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10월22일, 윤 전 총장은 검찰총장 퇴임 뒤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 국회 대검 국정감사에서 “임기를 마치고 나면 정치를 할 생각이 있냐”(김도읍 국민의힘 의원)는 질문에 “퇴임하고 나면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서 어떻게 봉사할지 그런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2021년 9월8일 윤 전 총장은 “상식적 맥락에서 봐달라. 제 처와 한동훈 검사장 사안 두 건을 묶어서 고발장을 쓴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2020년 당시 검찰 내부에선 두 사건 모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셈이다.
다시 2020년 1~2월로 시계를 잠시 돌려보자. 윤 전 총장은 2020년 1월31일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10%대 지지율이 나왔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2월3일 손 검사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으로 임명됐다. 윤 전 총장의 눈과 귀가 된 셈이다. 손 검사는 이른바 ‘판사 사찰 문건’을 작성하기도 했다.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열쇠는 손준성 검사의 관여 여부다. 검찰 안팎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현직 부장검사 ㄱ씨는 “지금 한 일은 초임 검사도 안 할 짓이다. 손 검사가 직접 했을 거라곤 극히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개혁위원회에 참여했던 변호사 ㄴ씨는 “손준성이 김웅에게 넘겼다는 걸 부인하니까 그것부터 밝혀야 한다. 밝혀지지 않으면 이 사건은 심각한 해프닝으로 끝난다. 누가 썼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포렌식 등의 방법으로 증거가 나온다면 손준성의 개인 일탈인지 대검 내부의 조직된 목소리였는지 살펴봐야 한다. 이때부턴 직권남용이 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야권 대선판 요동치는 중
‘고발 사주 의혹’이 나온 뒤 야권 대선 후보 지지 순위가 요동치고 있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32.6%)이 ‘야권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처음으로 윤석열 전 총장(25.8%)을 오차범위 이상으로 앞섰다(9월6~7일 <오마이뉴스> 의뢰로 리얼미터가 성인 2019명을 여론조사한 결과). 제20대 대통령 선거일까지는 반년의 시간이 남았다.
채강석 기자.
‘윤석열 검찰’ 범여권 인사·언론인 고발 사주 의혹
‘텔레그램 고발장’ 전달할 즈음 검찰엔 무슨 일이?
‘고발장’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야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재임기에 검찰이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범여권 인사 고발장을 전달했다는 의혹이 불거져나온 탓이다. 그 손준성이 그 손준성인가
의혹의 출발점은 이렇다. 2020년 4월3일 검사 출신 김웅 당시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텔레그램으로 고발장과 <조선일보> 기사 링크, 각종 자료 이미지 등이 전달됐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최강욱·황희석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언론사 기자들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내용이다. 이들이 2020년 4월 총선에서 범여권 후보들이 당선되도록 “검찰을 흠집 내는 기삿거리”로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 부인과 장모 범죄 의혹, 검-언 유착 의혹 등을 제보하거나 보도했다는 것이다.
김웅 당시 후보한테서 이 텔레그램을 전달받은 이에게는 ‘전달된 메시지-손준성 보냄’이라는 표시가 떴다. 텔레그램에서는 다른 사람의 메시지를 재전송할 때 자동으로 원래 메시지 작성자의 이름이 표시된다. 손준성은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의 이름이다. 김웅 당시 후보와 손준성 검사는 사법연수원 동기(29기) 사이다.
공익의 대표자인 검사가 정말 야당을 움직여 여당을 고발하는 ‘정치 공작’을 한 것일까. 이 고발장은 검찰이 직접 작성했을까. 이 ‘고발 사주’ 의혹이 사실이라면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은 얼마나 연루됐을까.
의혹이 점점 커지는 데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고발장 등을 전달한 이의 이름이 ‘손준성’으로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 이름과 동일하다는 점 △피고인 당사자 외에는 구하기 힘든데도 이른바 ‘채널A 검-언 유착 사건’ 제보자의 실명이 박힌 판결문을 자료로 전달했다는 점 △고발장의 서술 형식과 문체가 검찰 공소장과 비슷해 보인다는 점 등이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관여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사는 이유는, 손준성 검사의 당시 직책 때문이다.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전 범죄정보기획관)은 수사정보를 수집하며 검찰총장을 보좌하는 대검 핵심 보직이다.
의혹에 대해 당사자들은 부인하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대응한다. 손준성 검사는 2021년 9월9일 거듭 “(고발장을) 작성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고발장을 본 적 있냐’는 <한겨레> 기자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김웅 의원은 반복해서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면서도 9월8일 기자회견에서는 “정황상 제가 손아무개씨로부터 그 자료를 받아 당에 전달한 것일 수도 있다”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이날 윤 전 총장도 기자회견을 열어 “(고발장은) 출처와 작성자가 없는 소위 괴문서”라고 주장했다.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한 것이다.
의혹이 불거진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진실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이제 공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대검으로 넘어갔다. 9월6일 공수처는 시민단체인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이 윤 전 총장, 손 검사 등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접수해 검토 중이다. 9월8일 대검 감찰부는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한 제보를 ‘공익신고’로 공식 인정한다고 밝혔다. 대검이 손 검사 등 검찰 내부 관련자에 대한 감찰에 착수하면서 동시에 강제수사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4월3일 고발장과 ‘검-언 유착’ 사건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은 검찰 관여 여부다. 2020년 4월, 검찰이 야당에 고발을 사주할 만한 배경이 있었을까. 당시 상황을 다시 세세하게 복기해봐야 하는 이유다. 2020년 1월 부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총장과 줄곧 갈등했다. 윤 전 총장의 장모, 부인 관련 범죄 의혹은 물론이고 검-언 유착 의혹까지 제기돼 윤 전 총장은 수세에 몰린 상태였다. 추 전 장관이 검-언 유착 의혹과 관련해 진상 확인과 감찰 지시를 내리는 시점과 이른바 ‘고발장’이 전달된 시점은 거의 엇비슷하다. 검-언 유착 의혹은 채널A 기자가 윤 전 총장의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과 만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비리를 캐내려 공모했다는 의혹을 말한다. 이 기자는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에게 협박성 취재를 한 혐의(강요 미수)로 기소됐으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한겨레21>은 손준성 검사가 김웅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의심되는 두 종류의 고발장 전달 시점과 내용을 중심으로 당시 검찰 안팎의 상황을 재구성해봤다. 두 종류의 고발장 하나는 2020년 4월3일 전달된 고발장(이하 ‘3일 고발장’)이고, 다른 하나는 4월8일 전달된 고발장(이하 ‘8일 고발장’)이다.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의 윤석열 징계결정문(2020년 12월16일 작성),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공소장(2020년 8월5일) 등도 함께 톺아봤다.
2020년 3월31일, 검찰 내부는 문화방송(MBC)이 저녁 7시50분 검-언 유착 보도를 내보낸 탓에 바삐 돌아갔다. ‘윤석열 징계결정문’을 보면, 이 시간 전후로 한동훈 당시 부산고검 차장검사, 권순정 대검 대변인,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은 단체대화방에서 서로 메시지 53건을 주고받았다. 다음날도 이들 사이에 45건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오갔다. 이날 한 검사장은 “기자와 폭로된 대화를 한 사실이 없다”고 입장문을 발표했다.
4월2일, 추미애 전 장관은 윤 전 총장에게 ‘진상 확인’을 지시했다. 한국방송(KBS) 라디오 프로그램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제보자X’로 불리는 지아무개씨가 출연해 채널A 기자와 말한 검찰 고위직은 윤 전 총장의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이라고 밝혔다. 지씨는 ‘고발장’과 함께 전달된 판결문에 실명으로 등장하는 이다.
4월3일 오전 10시12분, ‘손준성 보냄’이라는 표기가 달린 채 텔레그램으로 <조선일보> 기사 링크가 김웅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자를 거쳐 야당 인사로 추측되는 제보자에게 도착했다. 검-언 유착의 제보자인 지씨가 범여권 관계자와 연루됐다는 내용의 기사다. 오후 4시19분에는 최강욱 등 범여권 인사를 고발하는 고발장이 각종 증거물과 함께 전달됐다.
‘3일 고발장’을 보면, 지씨가 거짓 제보를 했고 범여권 인사와 친정부 성향 기자들이 허위 보도를 했다는 주장이 담겼다. 특히 윤 전 총장 부인과 장모, 측근을 비방해 총선에 개입하는 등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있다는 문장도 나온다. “김건희(윤 전 총장의 부인)는 불법적인 주가조작에 관여한 사실이 없었고, 한동훈 검사장은 채널A 기자를 시켜 이철에게 유시민 이사장의 비리를 진술하라고 설득한 사실이 없었고, 지○○(제보자X)은 한동훈 검사장의 음성녹음을 청취한 사실도 없었다.”
4월8일 전날 최강욱과 황희석, 김건희 고발
2020년 4월8일 전달된 두 번째 고발장에는 최강욱 열린민주당 당시 비례대표 후보자가 유튜브 방송에 나와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담겼다.
“후보자인 피고발인이 국회의원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자신의 도덕성 등에 치명타가 될 수 있는 허위 인턴증명서 작성 사실 유무에 대해 위와 같이 거짓 해명한 행위는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1항을 위반한 허위사실 공표죄에 해당하므로 피고발인을 신속히 조사하여 처벌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즈음에도 대검 안팎에선 긴박함이 흘렀다. ‘8일 고발장’이 전달되기 전날인 4월7일, 최강욱·황희석 등 당시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들은 윤 전 총장의 부인 김건희씨와 장모 최아무개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은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으면 그해 7월 출범하는 공수처가 이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시민단체인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채널A 기자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한동수 감찰본부장은 윤 전 총장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MBC 보도 관련, 진상확인 조치 검토 보고’를 했다. 감찰 개시를 알리는 보고였다. 윤 전 총장은 “감찰 활동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8일 고발장’이 오간 4월8일, 윤 전 총장은 감찰본부 대신 대검 인권부가 검-언 유착 의혹 진상조사에 착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검찰 공무원 조사 과정에서 일어난 직접적인 인권침해를 감독하는 부서인 인권부가 이 의혹을 조사하는 것은 업무 성격에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3일 고발장’은 검찰로 넘어가지 않았지만 ‘8일 고발장’(이른바 ‘최강욱 고발장’)은 미래통합당을 거쳐 대검에 접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래통합당 법률자문위원인 조아무개 변호사는 2020년 8월 미래통합당 당무감사실장에게서 ‘고발장 초안’을 받아 편집한 뒤, 8월25일 대검찰청 민원실에 고발장을 냈다고 밝혔다. 미래통합당 ‘최강욱 고발장’ 흐름도(21쪽)에서 확인되듯이 ‘4월 고발장’(이른바 ‘4월8일 고발장’)과 미래통합당의 ‘고발장 초안’, 검찰에 제출된 ‘8월 고발장’에 나오는 주요 문구와 수치는 문건 형식의 차이를 제외하면 ‘판박이’였다.
2020년 5월 중순 전후로도, 손준성 당시 수사정책관은 윤 전 총장 가족과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을 전담해 정보를 수집했던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징계결정문’에는 “저희가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수정관실(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총장님 지시에 따라서 한 달 전부터 총장님 사모님, 장모님 사건과 채널A 사건을 전담해 정보 수집을 하였다고 들었는데, 관련 법리도 그곳에서 만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당시 이정현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는 증언이 나온다.
고발장 작성자를 못 밝힌다면
그 뒤 검찰은 2020년 10월15일, 총선을 앞두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최 대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인턴 활동 확인서를 거짓으로 작성하고도 총선 때 이를 부인하는 내용을 유튜브 방송에서 유포한 혐의를 받았다. ‘8일 고발장’의 주된 내용이 검찰 기소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10월22일, 윤 전 총장은 검찰총장 퇴임 뒤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 국회 대검 국정감사에서 “임기를 마치고 나면 정치를 할 생각이 있냐”(김도읍 국민의힘 의원)는 질문에 “퇴임하고 나면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서 어떻게 봉사할지 그런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2021년 9월8일 윤 전 총장은 “상식적 맥락에서 봐달라. 제 처와 한동훈 검사장 사안 두 건을 묶어서 고발장을 쓴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2020년 당시 검찰 내부에선 두 사건 모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셈이다.
다시 2020년 1~2월로 시계를 잠시 돌려보자. 윤 전 총장은 2020년 1월31일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10%대 지지율이 나왔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2월3일 손 검사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으로 임명됐다. 윤 전 총장의 눈과 귀가 된 셈이다. 손 검사는 이른바 ‘판사 사찰 문건’을 작성하기도 했다.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열쇠는 손준성 검사의 관여 여부다. 검찰 안팎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현직 부장검사 ㄱ씨는 “지금 한 일은 초임 검사도 안 할 짓이다. 손 검사가 직접 했을 거라곤 극히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개혁위원회에 참여했던 변호사 ㄴ씨는 “손준성이 김웅에게 넘겼다는 걸 부인하니까 그것부터 밝혀야 한다. 밝혀지지 않으면 이 사건은 심각한 해프닝으로 끝난다. 누가 썼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포렌식 등의 방법으로 증거가 나온다면 손준성의 개인 일탈인지 대검 내부의 조직된 목소리였는지 살펴봐야 한다. 이때부턴 직권남용이 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야권 대선판 요동치는 중
‘고발 사주 의혹’이 나온 뒤 야권 대선 후보 지지 순위가 요동치고 있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32.6%)이 ‘야권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처음으로 윤석열 전 총장(25.8%)을 오차범위 이상으로 앞섰다(9월6~7일 <오마이뉴스> 의뢰로 리얼미터가 성인 2019명을 여론조사한 결과). 제20대 대통령 선거일까지는 반년의 시간이 남았다.
채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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